아브람은 그돌라오멜의 동방 4개국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웨 골짜기, 왕의 골짜기, 곧 기드론 골짜기에서 소돔 왕을 만납니다.
소돔 왕은 동방 원정군에게 패배하여 도시의 시민들과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요단 서쪽의 산지로 피신한 상태였습니다.
소돔 왕은 최강의 군대임이 증명된 동방 원정대를 거짓말처럼 물리치고 모든 약탈물과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온 아브람의 개선 행렬을 마주합니다.
하지만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브람을 경계합니다.
“사람들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가지라”는 그의 말은 아브람의 수고에 표하는 감사가 아닙니다.
“사람을 보내라는 말”을 직역하자면 중의적으로 “생명을 달라”, 즉 “살려만 달라”는 애원처럼 들립니다.
소돔 왕의 태도는 그가 아브람을 길거리에서 만난 강도 같이 여기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소돔 왕의 입장에서는 아브람이나 그돌라오멜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지역의 패권에 혜성 같이 등장한 아브람은 소돔 왕에게 있어 그저 새로운 정복자의 등장이고, 새로운 통치자의 등장일 뿐입니다.
12년간 그돌라오멜을 섬겼듯이 이제는 아브람에게 조공을 바치며 섬겨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얼마 전까지 소돔 왕은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는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브람이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 인해 소돔 왕은 더욱 실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얻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세를 몰아 위풍당당하게 제국의 패왕으로 발전해 나갈 아브람에 비하면,
소돔 왕은 너무도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넘어 실의와 분노까지 느낍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런 소돔 왕에게 자신은 정복자가 아님을, 통치자가 아님을 선언하며 해방된 그들에게 종잣돈까지 쥐여 보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브람은 분명 하루아침에 세계 최강 군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강자가 되었습니다.
소돔 왕의 말대로 아브람이 원하기만 한다면 정말 정복자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돌라오멜에게 철저히 패배했던 사람들이니 살짝 어르기만 해도 그들은 모두 아브람을 정복자로 섬길 것이었습니다.
그는 통치자로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땅이니,
‘지금이 바로 그 약속이 성취될 순간’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다 취할 수도 있었습니다.
패왕의 길은 소돔 왕과 같은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길입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누구나 꿈꾸는 길입니다.
패왕이 되는 길이 열렸는데, 이를 내던지고 정상의 자리에서 자진하여 내려오는 아브람을 아마 소돔 왕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브람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돔 왕을 만나기에 앞서 그가 살렘 왕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질 그 자리에서 아브람은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살렘은 평강이란 뜻입니다. 멜기세덱의 이름은 정의의 왕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은 정의의 왕, 평강의 왕을 만났습니다.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는 아브람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지난 밤의 승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이었음을 아브람에게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승리를 해석해주는 그는 분명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왕이자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떡과 포도주를 제공하며 만찬으로 초대하였을 때,
아브람은 이 멜기세덱이야 말로 진정한 왕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왕과 봉신의 관계에서처럼 그에게 자신의 전부를 드린다는 상징으로 십일조를 드립니다.
아브람은 진정한 왕을 만나고, 자기 인생의 주인된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통치자의 자리에서, 정복자의 꿈에서, 패왕의 길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아브람에게는 십일조를 바칠 진정한 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바로 정의의 왕, 평강의 왕, 우리의 진정한 왕,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