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람에겐 승리의 기쁨보단 보복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지난날의 승리는 자신의 실력으로 이루어낸 승리가 아니었음을 잘 알기에, 혹시라도 보복을 위한 전쟁이 닥치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지금 아브람의 심리는 자신감이 아닌 두려움입니다.
또한 소돔 왕과 포로들에게 자신의 전리품 전부를 나누어 준 일조차 잘한 일인지 자신이 없습니다.
상대가 감사를 표하는 것도 아닌데 괜한 일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헛헛함과
전력을 노출하여 경계심만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 때문에 아브람은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아브람이 먼저 자신의 심리를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속마음을 모를 리 없는 하나님이 먼저 그의 마음을 두드리셨습니다.
계시의 말씀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보복을 두려워하는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주겠다’고 격려하십니다.
전리품을 나누어준 결정에 자신 없어 하는 그에게 ‘내가 너의 상급이라’ 하시며 위로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이런 위로는 실제적인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의 두려움은 그간 하나님의 약속과 위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간의 약속들이 이루어질 기약 없음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무엇을 주시려 하십니까? 주신다던 자손도 기약이 없지 않습니까?!’ 하고 자신의 두려운 마음의 근원을 털어놓습니다.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시며 하셨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중요한 약속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시작과 같은 약속입니다.
모든 약속의 초석이나 마찬가지인 이 약속들이 아직까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이후에 하시는 약속들도 허망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혹시라도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달라서 하나님의 약속들이 실은
그저 상징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드는 상태입니다.
현상 그대로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게 되는 것 아닌가 하여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실망하지 않는 법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어느새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접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상속자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나의 기대와 다를 수 있음을, 그래서 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살아가려는 아브람에게 있어
인생이라는 불확실한 미래는 기대와 다른 두려움의 영역인 것입니다.
그런 아브람의 두려움을 마주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에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란에 있던 아브람에게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불러내시고,
세겜 땅을 보여주시고,
롯과의 이별후엔 동서남북을 바라보게 하셨었는데,
그 하나님이 이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아브람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그에게 하늘나라를 상속하여 주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밤 하늘 가득하게 빛나는 별들은 마치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그 약속이,
구체적으로 눈 앞에 펼쳐지자 이에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믿음을 의로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믿음은 성령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닿아 그분의 의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렇기에 믿음도 의도 주께서 주시는 확실한 사랑의 보증이 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은, 시공간을 넘어 가장 확실한 사랑의 실체를 보게 될 때, 멈추게 됩니다.
믿음은 현실 너머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넘어서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