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는 어느덧 75세가 되었습니다.
처음 남편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들은 지도 어언 10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계속된 임신의 실패 속에서 ‘이러다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 때문에 실패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에 대한 걱정이 늘 사래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걱정은 현실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이미 10년 전에도 노산이었지만 지금은 이제 더는 임신의 가망이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뤄지는 이유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되고,
남편인 아브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사래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에 사래는 자신 대신 하갈을 아브람에게 들여보낼 계획을 세웁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대리모 계획을 제안했을 때 아브람이 흔쾌히 수락했다는 것은 그런 걱정을 사래 뿐만 아니라 아브람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언약에서 사래는 배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 말입니다.
아브람도 이대로 손 놓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마음에 사래의 제안을 덥석 수락해버립니다.
믿음의 사람도 실수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드러나는 아브람과 사래의 모습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그토록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던 임신이 하갈에게는 너무나 쉽게 성공해 버리자,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하는 허탈한 마음과 폭발하는 열등감이 멸시의 빛을 띤 하갈의 눈빛 앞에서 임계점을 넘어버립니다.
사래는 하갈을 학대합니다.
열국의 어머니라고 불리게 될 사래의 모습은 히스테리컬한 ‘갑질의 여왕’ 같고,
사래가 하갈에게 학대를 가하도록 방치한 아브람의 모습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비겁한 모습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유명인의 과거가 학교폭력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충격으로 아브람과 사래의 민낯이 여과 없이 폭로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행동과 모습에 어떤 미화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가 자기 손으로 남편의 잠자리에 다른 여자를 들여보낼 수 있겠습니까?
사래가 죽기보다 싫은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전적으로 아브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고,
자신은 직접 보지도 못한 하늘나라를 위해서였고,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자기희생적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동기가 되어도,
그 일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전적인 희생을 감내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고귀하고 고결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작정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아브람과 사래의 실패가 포함되어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대체 왜 하나님은 이 일이 이렇게 되도록 허용하셨을까요?
아브람과 사래가 이토록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허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들의 계획과 시도로 성취하고자 하는 그들의 선택과 결정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선명하게 밝히시기 위함입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음을, 마지막까지 어긋나는 그들의 심보를 통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어떤 것을 가증히 여기시고 또 배제하시는지 우리게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해보겠다고 시도하는 ‘어느 특별한 행동’입니다.
비극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 위기의 순간을 타개하기 위하여 내가 나서서 일해야 한다고 여길 때에 주로 발생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시도하는 방법이, 정작 하나님의 방법이 더는 아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이 성취하십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믿음의 조상과 열국의 어머니로 만들어내고야 마십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은 하나님이 성취하십니다.
그것이 아브람과 맺으셨던 횃불 언약의 골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일하심에 공로를 얹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의해 무너진 마음으로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갈등할 때,
마음을 굳게 먹고 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의 일은 주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가정의 일은 아버지께 맡기고 자녀는 그저 오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