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와의 만남에 목적을 마치신 하나님은 사라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시고 소돔으로 향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일행을 전송하러 함께 나섰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으로 행차하시는 이유를 밝히십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물은 것도 아니었는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소돔으로 향하시는 이유는 소돔에서 누군가의 부르짖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소돔 성의 죄악을 보시고 행악 간 심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이 누구의 부르짖음이었는지 짐작이 가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심판이 소돔에 당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냐” 며,
“만약 의인 50명이 있다면, 45명이 있다면, 40명, 30명, 20명, 10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묻습니다.
아마 아브라함이 조카 롯만을 걱정했다면 50명, 10명의 의인을 운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돌려 말하지 않고 롯의 구출을 직접 부탁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대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악인들에 대한 용서의 가능성을 묻습니다.
“혹 그중에 의인이 있다면 그 의인 때문에라도 악인들을 용서해 주실 수는 없느냐”고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롯 한 사람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질문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됩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이 언급한 용서란, 소돔 성의 악인들만을 걱정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성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가리켜 ‘세상을 심판하실 이’라고 부릅니다.
소돔 성의 문제를 세상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답변하시는 하나님도 “혹시 의인이 있다면 ‘모든 땅’을 용서하겠다”고 공언하시며,
용서의 문제를 소돔에 국한된 것이 아닌 ‘모든 땅’에 대한 것으로 확장하십니다.
즉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는 온 세상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원칙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은 소돔을 두고 깊은 신학적 주제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니까 소돔은 하나님의 기준과 원칙이 어떻게 시행되는지 보여주는 시뮬레이션의 장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곳 소돔에서 일어나는 일은 언젠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목숨을 다해 절박하게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있다면 나머지 악인들을 용서하겠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아브라함이 50명을 물어도, 45, 40, 30, 20, 10명을 물어도 하나님의 답변은 언제나 “Yes!”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몇 명이 있든지 간에, 의인의 비중이 몇 퍼센트든지 간에,
의인이 있기만 하다면 그 의인 때문에 나머지 악인들은 용서하겠다고 공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후에도 예루살렘에 대하여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는다면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단 한 명의 의인이라도 발견된다면,
그 의인 한 명 때문에 나머지 인간들의 죄악을 용서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나 결국 소돔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소돔 성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아니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받게 된 심판입니다.
의인 한 명이 없어 소돔이 심판받아야 했다면 세상도 그렇게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소돔과 같이 악한 이 세상도 의로운 한 사람이 없어 망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악인들을 용서하실 분이시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이 소돔으로 내려가겠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자신도 의로움을 행하는 자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롬3:10)는 말씀처럼, 아브라함도 의로움을 행하는 의인이 아니라,
그저 어떤 한 명의 의인으로 말미암아 용서받아 의롭게 여겨주심을 받은 사람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의롭지 않은 자신을 용서해주시고 의롭게 바라봐주신 이유를 하나님과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질문이 10명에서 멈춘 것은 포기가 아니라 바로 그 의인에 대한 기대함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실 의의 나라는 의인 한 사람이 없어 망할 우리를 구하시려
하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의로움으로 세우시는 나라입니다.
아브라함도 롯도 우리도 스스로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심으로 용서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악한 우리를 위해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가 세우신 의의 나라에서 주의 의로우심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