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은 아내를 잃었습니다.
소알 성은 요단 골짜기의 평야 지대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성읍이었기에,
어쩌면 하나님의 진노에서 안전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선택한 도피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에는 소돔과의 물리적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단 골짜기 평야 지역에 속한 모든 도시를 소돔과 함께 심판하셨는데,
그 심판의 대상에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 그리고 롯의 아내도 속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롯은 소알 성에 도착하기 일보 직전이었기에 안심하고 있었을 테지만, 소알 성에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
롯의 아내는 소돔에 두고 온 세간살이에 대한 미련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려자를 잃는 충격은 팔이나 눈을 잃는 것보다 더한 충격이지요.
롯은 하루밤 만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전 재산을 잃었고, 20년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었고, 반려자를 잃었습니다.
그야말로 롯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자신의 생명과 두 딸 뿐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롯에게 있어 새로운 삶의 터전은 소알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돔의 심판을 겪어낸 그 짧은 시간 동안, 롯의 생각은 소알 성을 선택하던 순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작은 성이어서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던 소알 성은 그에게 더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소돔의 거대한 죄악에 비하면 소알의 죄악은 성읍의 규모 차이만큼이나 작은 것이었을지 몰라도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작은 죄라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롯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직접 겪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소알 성에서의 삶을 포기합니다.
소돔에서 20여 년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왔던 롯이었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여전히 의롭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한 소알 사람들 사이에서의 삶은,
롯에게 있어 소돔의 심판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 투성이였습니다.
결국, 롯은 두 딸을 데리고 소알 성을 떠나 깊은 산속으로,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사실 롯은 소알을 떠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롯의 눈에 소알 성이 위험한 죄인들의 도시로 보였을지 몰라도,
소알 성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심판을 피하도록 용서받은 성읍이었기 때문입니다.
롯이 소알 성을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소알 성을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애초에 산으로 도망하라던 천사들의 말을 믿지 않고 소알 성을 도피처로 선택했던 것도, 이제 와 소알 성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보다 두려움을 따라 선택한 결정이었습니다.
롯이 보기에도 심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는 소알 성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들이었음은 분명할 겁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소알 성에서도 동일한 진리이니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소알 성 사람들을 용서하신 이유는, 애초에 그들이 선하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경우도, 롯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완전하고 의로워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롯도 다만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의로운 단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의로운 공로 때문에 구원받을 약속의 대상자로 인정받아 용서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소알 성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함을 얻었다면 용서함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들 스스로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의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의로우신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예수, 그분의 공로와 은혜로 용서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롯은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믿는다면, 소알 성에 베푸신 은혜 또한 믿어야 했던 것입니다.
소알 성은 그들의 부족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눈을 가려 은혜의 장소를 은혜의 장소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움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우리의 오늘을, 우리의 삶의 터전을,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교회를,
은혜의 장소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은혜가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