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여인들은 향품을 들고 예수의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안식일이 지난 첫날, 그들은 사랑하는 스승의 시신을 정성껏 수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무덤은 비어 있었고, 돌은 이미 옮겨져 있었습니다.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그들은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만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기억하라.”
두려움으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여인들을 향하여 천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고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그 약속을,
여인들은 마침내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허탄한 이야기로 여겼더라”고 누가복음은 기록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들은 증인으로서의 법적 자격이 없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증인은 최소 두 명의 남성이어야 했고, 여성과 어린이, 종들은 증인 자격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녀들은 증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녀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인물들도 아닙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두 사람이 여자들에게 말하고, 여자들이 다시 제자들에게 말해주는 모습을 통해,
증인으로서 두 사람의 역할이 여자들에게 주어졌음을 문예적 병행 구조로써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사건의 증인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자격 없는’ 여인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셨을까요?
왜 더 큰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자격 없는 이들을 증인으로 세우셨을까요?
성경이 말하는 증인의 핵심 역할이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권위나 설득이 아닙니다.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느냐에 달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기대하는 증인의 진정한 역할이란 바로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라”는 천사의 말과 “기억하고”라는 여인들의 반응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실 예수’에 대한 복음을 중심으로 하여 앞 뒤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증인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인들의 증언을 모두가 무시했지만,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그는 즉시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왜였을까요?
베드로에게는 특별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그럴 리 없다”며 반대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하셨을 때도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여인들을 통해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부인했던 예수님의 또 다른 말씀,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말씀의 기억으로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무덤에 도착한 그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지는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저 세마포만 남은 빈 무덤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헬라어 성경은 베드로가 “자신을 향해 돌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돌이킨 후에 형제들을 굳게 하라”고 하신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여인들의 증언이 베드로의 기억을 일깨우고, 그 기억이 신앙의 반응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인들의 증언을 받아 힘 있게 하는 것은 여인들의 권위나 설득력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을 기억하게 하심으로써 베드로의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증인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나 영향력이나 설득의 능력이 아닙니다.
복음을 기억하도록 그저 전하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나머지는 성령이 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믿어지게 하고 복음이 받아들여지게 하는 것은 증인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성령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내 노력으로 다른이에게 믿음을 선사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증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그저 겸손히 전할 뿐입니다.

사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우리 대부분은 세상에서 특별한 권위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유명한 지식인이나 영향력 있는 인사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은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을 이해하도록 가르치시고, 기억하게 하시며, 그 말씀에 반응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격 없는 여인들을 부활의 첫 증인으로 세우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부르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빈 무덤이 우리에게 남긴 증언,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우리는 증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앞에 놓인 억측과 억울함을 벗겨내는 일에
성령에 의해 동원되고, 자원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