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공평하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은 죽음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뛰어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모두가 죽음 앞에서 평등해집니다.
우리는 이 절대적인 죽음의 권세 앞에서 때로 깊은 무력감과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절망 속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글로바와 그의 동행자(아마도 그의 아내였을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었던 예수님마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아 실망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예루살렘을 떠나 그들이 무교절 기간동안 숙소로 잡아놓은 엠마오를 향해 걷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단순한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였고,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리라 기대했던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는 율법의 말씀대로
가장 비참하고 저주스러운 사형 집행 형태인 십자가형으로 죽으셨다는 사실은
그들의 메시아 신앙을 뿌리째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는지,
어느새 그들 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가와 함께 걷고 계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였더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그들의 눈이 외부 힘에 의해 가려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시각이 십자가 사건 이후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왜 오셨는지, 왜 죽으셔야 했는지, 실제로 어떤 분이신지 전혀 몰랐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는 곁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열정은 실망과 낙심으로 식어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닫힌 눈과 잘못된 기대를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을 실망 가운데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찾아와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눈을 열면 구약성경 전체가 이미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정녀 탄생부터, 갈릴리에서의 사역,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것과, 버림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
그리고 3일간 음부에 계실 것까지, 성경은 일관되게 메시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메시아가 고난받아야 하는 이유도 명확히 보여줍니다.
에덴동산에서의 가죽옷, 이삭 대신 제물이 된 어린양, 문설주에 발라진 유월절 어린양의 피,
속죄소에 뿌리는 피, 우리의 슬픔을 지고 우리의 허물을 대신하여 채찍에 맞는 종…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치적, 군사적 해방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에서의 구원을 위해 오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그가 우리 대신 버림당하시고 죽으셔야 우리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대신 버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런 고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율법이 약속하는 생명을 얻어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부활에 성령이 연합하여 주심으로 함께 그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슬픔과 절망으로 식어버렸던 가슴에 말씀의 불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알던 성경 구절들이 파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고난받고 영광에 들어가실 메시아’라는 한 주제를 향해 일관성 있게 정렬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경험의 정점은 엠마오에 도착하여 식사를 할 때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 주시는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인식이 아니라, 영적 실체를 깊이 깨닫는 계시의 조명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수치심에 눈이 밝아졌던 것과 달리,
엠마오의 제자들은 생명의 양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들의 무지는 깨어지고, 인식의 한계는 새로워졌습니다.
슬픔으로 식어버린 마음이 뜨거운 열정으로 변화되자, 그들은 즉시 어두운 밤길을 뚫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떠날 때는 실망과 절망으로 마음이 식어있었지만,
돌아올 때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쁨과 성경의 진리를 깨달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그가 부활하셨음을 깨닫는 사람들마다 벅차오르는 마음의 뜨거움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의지와 의무로 이겨내야 하는 전쟁으로 생각한다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의무와 책임으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의지만으로는 지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아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지치지 않습니다.
열정은 거슬러 오르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서 자다가도 일어나 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슴을 열정으로 뜨겁게 하는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그분이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주님의 그 약속이 살아있기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더라도 주의 지팡이가 보호하신다’는 것을 신뢰하기에
우리는 주저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눈을 열어주십니다.
잘못된 시각, 잘못된 신앙을 고쳐주십니다.
식어버린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기쁨과 열정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기쁨으로 뛰어 돌아오는 증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