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장의 모세 출생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사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예표입니다.
개인의 이름보다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은 모세의 부모를 “레위인”과 “레위 여자”로만 소개합니다.
레위 지파는 훗날 제사장 가문이 되며, 이는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을 예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영광이 아닌 구속사적 목적을 위해 이 이야기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잘생겼다고 말하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엄마가 아기의 잘생긴 것을 보고 삼개월을 숨겼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언급이 아닙니다.
원어상으론 그녀가 아기를 ‘보니 좋았다’는 뜻입니다.
요게벳이 아기를 보고 “좋았다”고 할때 사용한 단어 ‘토브’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이 창조물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실때 사용된 바로 그 단어입니다.
요게벳이 아기를 보고 좋아한다는 표현은 창조의 언어로써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하는 표현입니다.
바로의 영아 살해 명령이 지배하는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창조와 생명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셨습니다.
이는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생명 역사가 멈추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갈대상자에 아기를 태워 나일강에 유기한 요게벳의 행동은 절망감에서 비롯한 포기로서의 유기가 아닌
생명의 하나님을 소망함에서 비롯한 치밀한 계획의 실행이었습니다.
갈대상자에 아기를 태운 것은 즉흥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대상자에 역청과 나무진을 바르기 위해선 돈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시 역청과 나무진은 이집트에서 구할 수 없는 수입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계획한 의도적인 유기였습니다.
요게벳은 갈대 상자를 나일강에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갈대 사이에 고정”시켰고,
아기의 누나인 미리암을 시켜 혹 갈대상자가 떠내려가지는 않는지 지켜보고 있게 했습니다.
이토록 조심스럽고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은,
갈대 상자를 둘 장소와 시기 또한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오는 시점까지 계산된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인간의 계산과 계획과 철저한 준비는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계획은 결코 사람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계획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다 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라의 딸이 그 아기를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예측할 수 없고 통제 할 수 없기에 인생은 언제나 우발적이고 그래서 내 뜻대로 인생을 주도해나갈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모세의 구원에는 인간의 계획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있었습니다.
바로의 딸이 히브리 아기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도, 파라오의 악랄한 명령에 대항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뜻의 히브리어 ‘하말’은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
상대방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여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바로의 딸이 갈대 상자를 발견했을 때, 울고 있는 아기를 보자 그녀의 마음이 함께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기를 갈대상자에 넣어야 했던 엄마의 감정이 그녀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 아기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결정을 합니다.
하나님은 그녀를 통하여 모세를 죽음의 강바닥에서 건져내어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기는 장성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홍해 가운데에 건져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딸의 마음을 만지셨더니 파라오의 악랄한 계책과 명령은 모두 소용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면 절대적 권력조차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면 사망권세 조차 패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만지시고 바꾸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면접관의 마음, 거래처의 결정, 상대방의 반응 등 인생은 온통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인생은 내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주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릴 구원할 갈대 상자로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은 절대권력 바로의 딸이 나일강으로 내려온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망의 강가로 내려오셨습니다.
방주가 노아 대신 홍수에 던져져 생명을 살렸듯, 아기를 살린 상자를 죽음의 강에서 건져내어 모세는 살았습니다.
바로의 딸이 모세의 엄마가 되어주었듯,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 삼으시고 아버지 되어 주십니다.
갈대(쑤프) 사이에서 모세를 살리신 하나님은 훗날 홍해(얌쑤프)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살려내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의 계획을 완전케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