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어른은 언제 되는 것일까요?
법적으로는 20세에 성인이 됩니다.
또한 생물학적으로는 사춘기를 거치면 성인이 됩니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말하곤 합니다.
아마 진정한 어른이 되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에서는 모세가 어른이 된 순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모세가 “장성하게” 된 시점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기록합니다.
행7:23에 따르면 이때 모세의 나이는 40세였습니다.
모세는 일생동안 내적 갈등과 고뇌를 품고 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왕자로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방에서 객이 될 것이라 약속하셨던 시간인 400년도 어느덧 10년 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
내가 형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두 눈 꼭 감고 편안한 삶을 택할 것인지, 고통받는 동족과 함께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40세가 되던 해, 그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성경은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나갔다”고 기록합니다.
이는 그가 마음속으로 이제부터의 인생은 형제들을 위해 살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합니다.
히11:24은 ‘모세가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다’고 기록합니다.
사건이 터지기 이전부터 모세는 이미 형제들을 위해 살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결국 사건이 벌어집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학대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모세는 좌우를 살펴보고는 히브리인을 폭행하던 애굽인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모래에 파묻어 숨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세의 이 행동을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한 우발적인 폭력으로,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몰랐던 미숙한 행동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의 조명 아래서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가 좌우를 살펴보았다”는 표현은 단순히 목격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예적 병행 구조를 살펴보면, 12절의 ‘아무도 없음’이란
14절에서 히브리인이 모세에게 던진 “누가 당신을 우리의 통치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는가?”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응합니다.
즉, 모세가 본 것은 그 순간 약자를 지키고 정의를 집행할 통치자와 재판관의 역할을 할 사람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찾아 볼 수 없다는 영적 현실이었습니다.
형제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 순간에도 못 본 척 눈을 질끈 감고 회피하느라 용기있게 나서는 이가 없는 것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왕같은 제사장의 자리에서 약자를 도와주고 정의를 지켜내어
하나님의 뜻대로 정상화 시킬 지도자와 재판장의 자리에 나서는 사람이 실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세는 목자 없는 양같은 자신의 형제들을 위하여,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압제당하는 약자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기로 한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오랜시간 고민해왔던 모세가 결심한 저항의 시작입니다.

성경은 모세의 이 행동을 비난하긴커녕 오히려 ‘믿음으로 행한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형제들의 무거운 짐을 보았고, 폭력과 억압을 보았습니다.
이 시선은 목자 없는 양처럼 고통받는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의 학대받음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훗날 하나님도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시기 위해 애굽의 병사들을 홍해에서 치시고 모래 사장 아래로 그 시신을 삼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행동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으로서,
홍해 사건과 동일한 의미가 복선으로 숨어있습니다.
불의한 폭력 앞에서 약자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것은 미숙하고 성급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적극적인 순종입니다.
모세가 이런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만약 모세가 불의를 보고도 참았다면, 못 본 체 했다면,
이스라엘에 출애굽하는 구원은 없었을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약자를 돕고 정의를 지키는 일인데, 주변을 살펴봐도 그 일을 감당하려 나서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아도 해야할 일을 하는 사람,
외면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하는 사람,
어른이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언제나 미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다림이 미덕’이라는 말 뒤에 숨어서 불의를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책임과 비겁함을 포장하는 위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을지라도,
이후의 일들이 어떻게 전개될지 장담하지 못할지라도,
목자 없는 양들의 비참함을 슬퍼하며 나서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내딛는 의로운 결단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실패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성공으로 보아주십니다.

우리는 불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폭력 앞에서, 위험 앞에서, 위기 앞에서 아무도 나서지 않고 침묵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약자를 돕기 위해, 정의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우리는 분연히 일어나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 수 있도록,
진정한 어른이 되도록 우리를 장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