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제사하러 백성들과 광야로 나가겠다는 말을 바로에게 전하러 갔던 모세는
오히려 바로에 의해 노역만 강화된 채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렇게 가중된 노역으로 말미암아 이제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행한 일이었으니, 모든 일이 순탄하고 형통하게 진행되어도 모자랄 판이지만,
결과는 대실패였습니다.
실패로 인한 고난이 격해지자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을 보내신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제 네가 바로에게 할 일을 보게 되리라”(7:1)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실패의 고난 속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경험하는 채널이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의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은 얼핏 보기엔 미래형 같아 보이지만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고난이 끝나고 난 후 먼 미래에 알게 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고난의 한 복판에서 이미 알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고난과 어려움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 자체가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겪을 고난도 통치하시고 섭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하나님의 손으로 사용하시듯,
바로도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써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를 완악하게 하셨다고 할 때 사용된 히브리어 ‘하자크’는
하나님의 ‘강한’ 손이라고 할 때에도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즉 하나님은 바로를 그의 고집스러운 성품대로 내 버려 두사
애굽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동안에도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이 유감없이 발휘되도록 버텨내는 역할에 사용하십니다.
즉 바로는 심판을 통해 드러날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드러낼 도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도 때에 맞게 사용하십니다.
바로, 앗수르, 심지어 유다까지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겪는 고난도, 우리 주변의 악한 일들도
모두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7:5)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애굽도 하나님을 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알리라는 동사 역시 미완료형이 아닌 완료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동안, 그래서 이스라엘이 고난을 겪고 있는 동안에도
이스라엘뿐 아니라 그들을 괴롭히던 애굽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알아가게 됩니다.
고난을 통과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무엇인지를 애굽 사람들에게 보여주십니다.
감사할 수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고, 찬양할 수 없을 때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만족을 삼고, 하나님을 기쁨과 즐거움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 안에 있는 기쁨과 평안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론에게뿐만 아니라 바로에게도 모세를 신처럼, 하나님처럼 세워주십니다.
바로도 모세를 보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아론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로와 애굽인들도 하나님이 여호와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정작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십니다.
안다는 뜻의 히브리어 ‘야다’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깊은 경험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대체 아브라함 와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공동체로서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개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여호와로 소개하시는 하나님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 아니라,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십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제 200만 명이 넘는 대민족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하나님께서 이제 공동체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족장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것은 고난을 함께 이겨낸 사람들의 공통적 경험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공통의 기억을 간직하는 경험,
그래서 남아있는 고난의 시간들도 이겨내도록 도움 받는 경험,
즉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적 은혜를 넘어서 함께 고난을 이겨낸 공동체 의식으로,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함께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우리에게 교회를 주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자신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