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리면 인간의 노동은 멈춥니다.
밭을 갈던 쟁기를 내려놓고, 타작하던 손을 멈추는 시간, 밤은 인간의 무력함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출애굽의 바로 그 밤을 ‘여호와의 밤’이라 부릅니다.
인간이 일할 수 없는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홀로 깨어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2장의 유월절 밤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장한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애굽 전역에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장자부터 감옥에 갇힌 죄수의 장자까지,
심지어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간 아홉 번의 재앙을 통해 경고하셨던 하나님의 공의가 마침내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으로 귀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에게 돌진하시면 죄인은 견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을 진멸하는 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살벌한 심판의 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안 풍경만큼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들은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는, 집 안에서 양을 구워 먹었습니다.
그 밤, 하나님은 어린양의 피가 발린 집을 ‘넘어가셨습니다’.
넘어가다는 뜻의 히브리어 ‘페사흐’는 원래 ‘절뚝거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공중을 날아 지나가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짓밟아야 할 심판의 발로, 문설주에 발린 어린양의 피를 대신 밟고 지나가신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가 그들을 지켜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1년 된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릅니다.
1년 된 어린양이란 아직 새끼를 가지지 못한 양으로서 이는 아들 됨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를 대신 밟고 넘어가셨다는 것은
아들의 피를 밟고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아픔, 그 절뚝거림으로 우리를 살리셨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밤,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유월절을 위해 준비하던 어린양처럼, 예수님은 아뷥월 10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닷새 후 14일 저녁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함께 하시며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유월절에 흘려야 했던 어린양의 피가 자신의 피임을,
그 피 아래서 먹어야 했던 어린양이 자신의 몸을 가리키는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밤, 유월절은 십자가에 달리실 바로 그날을 가리킴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죽어가는 동안에도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임 당하고 있음을 분명히 선언합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뼈는, 유월절 어린양의 뼈처럼, 하나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에쩸’은 ‘뼈’라는 뜻이지만 동시에 ‘근본, 정확히, 바로 그것’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뼈가 깨지지 않았다는 표현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그 언약의 본질(에쩸)이
세상의 어떤 방해에도 꺾이지 않고 완벽한 섭리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징입니다.
여호와의 밤,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 유월절 식사에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결코 혼자 먹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유월절 식사는 처음부터 가족이, 이웃이, 심지어 할례 받은 이방인까지 함께하며 먹는 식사였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회중’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 바로 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식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처음부터 공동체를 부르시는 은혜였습니다.
남은 고기를 아침까지 두지 않고 태우라는 명령은 이 식사의 특별함을 더욱 부각합니다.
남은 고기를 아침까지 두지 않고 태우는 규례는 오직 제사장 위임식에서 동일한 명령으로 율법에 등장합니다.
즉 유월절은 이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제사장 공동체로 빚어내는 식사인 것입니다.
이 식사는 반드시 함께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유월절 식사가 그러했다면, 십자가 은혜 또한 그러합니다.
그렇기에 예배란 이 유월절 식사에 참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것입니다.
예배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입니다.
관람이 아니라 참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물고, 뜯고, 씹고, 맛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교회를 주신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혼자서는 영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은 내 안에도 계시지만, 내 옆의 성도를 통해서도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함께 먹어야 합니다.
서로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세워주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우리의 오늘 날도 여전히 밤과 같은 세상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자랑이 무색해지는 절망의 밤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밤은 ‘여호와의 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꺾이지 않는 언약의 뼈를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양식을 함께 나누는 자들에게,
이 밤은 심판이 아닌 구원의 새벽을 여는 위임식의 시간이 될것입니다.
보이는 양식인 성찬과 보이지 않는 양식인 말씀은 유월절 식사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고
십자가의 보혈에 우리를 연합시켜 주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 교회를 영원한 나라를 살아갈 예배 공동체로 빚어주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