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만 60만 명, 남녀노소 최소 2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무리가 430년 만에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서둘러 약속의 땅으로 달려가야 할 시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탈출이라는 자연스러운 이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갑자기 무려 40년 후에나 지켜야 할 ‘먼 미래의 규례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초태생, 즉 처음 난 것은 다 내 것이라는 소유권 선언과
무교절을 지키야 할 이유를 후손들에게 가르치라는 내용들입니다.
다급하고 시급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먼 미래에 지켜야 할 내용들을 가르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하필 출발의 순간인 지금일까요?
그것은 분명히 출발에 앞서 후손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바로 그 내용,
무교절을 지키는 이유와 초태생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유가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광야 같은 인생길을 단 한 발자국도 제대로 내디딜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도’보다 ‘방향’을,
아니 더 정확히는 ‘방향’보다 ‘정체성’을 먼저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내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이때 부정하여 하나님께 드려질 수 없는 짐승의 경우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하나님은 명확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정결한 짐승인 소나 양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제사로써 바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짐승인 나귀는 다릅니다.

굽이 있으나 새김질을 하지 않는 나귀는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질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방법뿐입니다.
어린양으로 대속해서 살리거나,
아니면 목을 꺾어 죽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장자를 대속함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소나 양의 줄에 세우지 않으시고, ‘나귀’의 줄에 세우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본질이 ‘나귀’와 같다고 선언하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존재, 하나님께 드려질 만한 자격이 있는 ‘소나 양’ 쯤으로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내 직분, 내 헌신, 내 도덕성이 나를 정결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부정한 존재다.
대속의 은혜가 없으면 목이 꺾여 죽어 마땅한 나귀와 같다.”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이 선언 뒤에, 비로소 복음의 빛이 쏟아집니다.
나귀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귀가 훌륭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귀를 대신해 ‘어린양’이 죽는 대속의 방법뿐입니다.
‘장자’라는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신분 덕에 살아남은 것이 아닙니다.
유월절 그날 밤, 죽어야 할 그들 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대신 피 흘려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장자니까 구원받았다”라고 생각합니다.
내 자격과 조건이 구원의 근거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 순서를 완전히 뒤집습니다.
장자라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았기에 장자가 된 것입니다.

유월절 그 밤의 죽음이 지나간 이후,
아직도 어린양의 피가 흘러내리는 그 문을 열고 밖으로 첫발을 내디뎌 나오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혈통으로 맺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새롭게 태어난 공동체였습니다.
문을 열고 어린양의 피 아래를 지나온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출애굽의 밤이란 하나님의 백성이 태어나는 출산의 현장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산 사건으로서의 출애굽은 거듭남이 무엇이지를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 보혈의 그림자였습니다.
나귀처럼 부정하고 고집 센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찢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라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낳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나야 하는 거듭남의 사건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피 아래를 지나온 우리는 더 이상 목이 꺾일까 두려워하는 나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대속된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장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놀라운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라고 명하십니다.
머리로만 알지 말고, 네 손과 발로, 너의 삶으로 그 정체성을 증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어떤 순간에도 이 정체성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격 없는 나귀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하나님의 장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광야 같은 현실 속에서 초라하게 느껴질 때,
거듭된 실패로 인해 절망 속에 주저앉았을 때,
덮쳐오는 슬픔 속에 고개 들기 어려울 때,
손에 새긴 그 사랑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이름을 그분의 손바닥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의 고개를 들게 하시고 어깨를 피게 하실 거예요.
우리는 아버지의 기쁨이자, 자랑이자, 자부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