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비딤은 ‘소생하다’라는 히브리어에서 온 이름으로, 휴식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휴식처라는 이름과는 반대로 그곳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 여정을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였다”라고 표현합니다.
순종해서 왔는데 물이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갈증을 만나자 백성들은 곧바로 원망을 터뜨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그들은 과격하게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사실 의심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날 아침에도 만나를 먹고 왔습니다.
광야를 하얗게 덮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 날 아침에도 경험하고 왔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분노에 가까운 불평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하나님은 결코 자신들을 버릴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볼모 삼아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활용하려는 심산으로 다툼의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는 내 말대로, 내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몰아붙이려는 협박입니다.
내 갈증을 채워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은혜를 권리로 바꾸어버린 왜곡된 사랑의 갈망 탓입니다.
타락한 본성의 뒤틀린 갈증은 비틀리고 삐둟어져, 사랑을 갈구하되
상대방의 사랑을 강제로 빼앗아서라도 쟁취하려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사랑을 소유하고 점유하기 위해 상대를 굴복시키고 통제하려 합니다.
이는 상대방을 사랑함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데에 상대의 사랑을 사용하려 함입니다.
텅 빈 심령을 채우기 위해 타인의 사랑을 강제로 탈취하려 하지만,
하나님 없는 갈증은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기에 갈수록 이 갈증은 더욱 기괴한 집착으로 변질될 뿐입니다.

이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은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지팡이로 나일강을 쳤을 때 애굽의 모든 물은 피로 변했습니다.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는 불순종하는 이들에게 갈증으로 심판하는 하나님의 회초리였습니다.
하나님이 회초리를 들고 백성들 앞을 지나라가 하십니다.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하십니다.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회초리를 휘두르라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고 이기적으로 그 사랑을 이용하려 하는
오만방자한 그 백성들에게 회초리를 휘두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서 계신 반석을 말입니다.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를 휘둘러 반석을 치기 위해선 지팡이가 반석 위에 서계신 하나님을 지나야 합니다.
심판의 회초리가 하나님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반석이 곧 그리스도라고 증언합니다(고전 10:4).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 외치신 주님, 생수의 근원이신 그분이 우리 대신 갈증을 당하셨습니다(요 19:28).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이 인간의 내면 속 갈증의 실체이기에,
그분은 우리 대신 하나님께 버림받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버림받으신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을 때,
그분의 찢어진 몸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요 19:34).
심판이 우리가 아닌 그리스도께 쏟아졌기에,
그분이 피를 흘려주셨기에 우리는 물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석이신 그분이 우리 대신 심판당하셨기에 우리는 생명의 물을 마시고 해갈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사53:5).

본문은 원망으로 물을 쟁취해 낸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빚어가시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 없는 곳, 뒤틀린 갈증과 삐뚤어진 갈망의 골짜기에서는 원망과 다툼과 싸움만 터져 나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결코 우리를 물 없는 곳에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물 없는 곳으로 이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뒤틀린 욕망을 가진 죄인들의 삐뚤어진 착각일 뿐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반석을 쪼개고 터져 나오는 생명수 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계신 중이었습니다.
이 물을 만나야 르비딤은 진정한 휴식처가 됩니다.
섣불리 하나님의 명령과 이끄심에 실망하여 분노를 터드린 이스라엘의 비틀어진 갈증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만 해갈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반석으로 백성들을 이끄십니다.
우리는 반석을 가르고 나온 은혜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가르고 나온 생명의 물을 마셔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서 해갈해야, 우리는 다툼과 원망과 싸움을 그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꿈틀대는 욕망이 원망과 다툼의 싸움으로 튀어나오려 할 때,
우리는 고개를 들어 반석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수를 마셔야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리스도의 생명 샘물과 함께 분노와 원망과 짜증을 꿀꺽 삼켜낼 때,
주님은 우리를 이 반석 위에서 교회로 빚어 가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