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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계명 : “도둑질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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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은 그 자체로 한 가지 사실을 전제합니다.
도둑질이 성립하려면 ‘내 것’과 ‘네 것’의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별이 없다면 애초에 도둑질이라는 개념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8계명은 소유의 인정을 전제로 합니다.
문제는 소유의 정당성입니다.
도둑질이란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은 소유 행위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유의 정당함이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정당함이란 일한 만큼 얻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값을 지불하면 정당한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한 만큼이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강한 권리의 요구는
스스로 소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죄성의 발현입니다.
이러한 죄성은 내가 흘린 땀으로 얻은 것들은 정당한 내 소유이기에
그것을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이라는 주인 의식의 표출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유의 정당함에 대해 전혀 다른 이해를 요구합니다.
성경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소유 개념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궁극적으로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 소유권을 사람에게 허락하신 적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성경은 땅도, 거기 충만한 것도 모두 여호와의 것이라고 말합니다(시 24:1).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내 것이라며 절대적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은, 관리하고 통치하고 운영하도록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기시고 허락하신 사용권 안에서 우리는 그저 주신 은혜를 누리는 것일 뿐이지,
궁극적인 소유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분배받은 땅을 영영 팔 수 없었고,
희년이 되면 본래 사람에게로 사용권이 돌아와야 했습니다.
희년은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는 언약 장치의 기능을 합니다.
이로써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절대적 소유를 얻은 사람들이 아니라,
주인의 것을 맡아 가지고 운영하는 청지기인 것입니다.
청지기가 누리는 모든 것은 주인으로부터 얻습니다.

따라서 청지기에게 정당함이란 두 가지 깊이에서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은혜로 얻는 정당함입니다.
정당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이 내 필요를 채우시려고 맡기신 것들이 정당한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영역을 내가 관리해야 하는 영역으로 소유화하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더 깊은 영역의 정당함은 맡기신 영역의 충성된 통치와 운영입니다.
즉 은혜로 주신 정당함은 그 정당함이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아담에게 지구를 맡기시고 에덴을 맡기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담은 지구와 에덴을 생육하고 번성하며 통치하고 운영하며 경작하여 가꾸어야 했습니다.
청지기에 있어 맡아가지고 있음이란 이렇듯 충성되게 맡은 일을 수행하는 것까지를 포괄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도둑질의 진짜 얼굴이 드러납니다.
도둑질이란 단순한 소유의 침범 문제이기에 앞서 청지기직의 거부인 것입니다.
제8계명의 물음은 ‘무엇을 어떻게 얻었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쓰고 있는가’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맡겨진 것을 내 것이라 우기며 주인 행세를 하는 것,
그것이 도둑질의 본질인 것입니다.
곧 도둑질이란 청지기의 자리를 거부하는 일입니다.
인류의 첫 도둑질이 정확히 그러했습니다.
아담이 훔친 것은 선악과라는 열매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손을 뻗은 것은 주인의 통치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선과 악의 기준이 되려 했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려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그분의 은혜마저 내 공로 덕분으로 삼으려한 도둑들입니다.

더 두려운 것은, 이 빚을 갚을 길이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도둑질한 것을 갚을 때 4배에서 5배로 손해배상까지 이루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슨 수로 하나님의 세계를 훔치고 파손한 값을 지불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갚을 방법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바로 이 막다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청지기로서 그릇 행하여 범죄 했다면, 빚을 갚을 수 없는 자가 살 길은 하나뿐입니다.
종이 아니라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종은 품삯으로 셈하지만, 아들은 사랑으로 상속을 얻습니다.
아들이 누리는 모든 것은 갚아야 할 빚이 아니라, 유산으로 물려받을 은혜의 정당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
도둑이던 우리를 아들 삼으시려고, 그 아들의 것을 우리에게 물려주시려고, 그분이 죽으셨습니다.
도둑은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만, 
그리스도는 자기 것을 내어 우리를 채우셨습니다.
자신의 부요함으로 우리를 채우시고 자신은 사망을 짊어지셨습니다.
상속이란 본래 죽음을 통해 거저 건네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도둑이던 우리가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구원 얻은 이들은, 그래서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가 그러셨듯 채우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는 은혜로 얻은 것에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일구어 갑니다.
아들이 된 이들에게 제8계명의 완성은 “빼앗지 마라”에서 멈추지 않고
“받은 것으로 채우라”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사랑을 채우고 복음을 채우고 생명을 채웁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 힘을, 사랑을, 그리고 말씀을 채워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