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든든한 내 편을 원합니다.
덮어놓고 내편을 들어줄 사람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내 편’이라는 말은 결코 생각만큼 순진한 바람의 개념이 아닙니다.
내 편을 만든다는 것은 반드시 ‘내 편에 속하지 않는 사람’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을 만드는 마음의 세계관은 사실 언제나 대결 구도입니다.
내 편이 아니면 상대가 되고, 상대는 곧 적이 되며, 적은 어느새 악마화됩니다.
그렇기에 내 편을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끝내 원수를 만들어 냅니다.
원수를 이기려면 세력이 필요합니다.
출애굽기 23장은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라고 명령합니다.
그만큼 다수에 속하고자 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다수는 힘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사실처럼 들리고,
많은 사람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그 방향이 옳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다수를 내편에 세우기 위해 소문을 사용하곤 합니다(출23:1).
헛된 소문이란 꼭 거짓말이 아니어도 가능합니다.
진실의 일부만 골라 사건을 특정 각도로만 바라보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프레임을 짜서 사건을 규정하면,
그 프레임 이면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숨기고 싶은 내 책임을 숨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공분과 동정심이 모아 다수를 만들어냅니다(출23:2).
다수를 만들기 어려우면 확실한 소수를 사면 됩니다.
뇌물은 단순히 돈 봉투만을 뜻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서 판단의 기준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이 뇌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미리미리 선물로 마음의 빚을 지우고 친분을 쌓아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출23:8).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지요.
친한 사람의 잘못에는 사정이 있기 때문으로 보이고,
미운 사람의 잘못에는 어긋난 원칙만 보일 뿐입니다.

때로는 불쌍함도 내 편을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동정심을 구걸하여 사람들을 내 곁에 세우는 방법입니다(출23:3).
방법은 달라도 목적은 하나입니다.
어떻게든, 내 편을 만들기 위해 하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은 약자에게 팔이 구부러집니다.
그러나 약자를 돕는 것과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약자를 돕는 데에는 내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의 손해를 내가 메우고, 그의 짐을 내가 함께 지고,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주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해 주는 것은 비용이 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편들기에는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그의 잘못을 없었던 일로 덮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덮어놓고 그의 편을 들어준다고 해서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없습니다.
나와 친한 그 사람도, 불쌍한 그 사람도 손해 보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책임의 값은 엉뚱한 사람이 대신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덮어놓고 편 들어주는 일이란,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심리의 발현인 것입니다.
성경은 편들기가 아닌 원수를 진정 도울 것을 명령하십니다.
원수의 길 잃은 소는 돌려보내 주고,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 아래 엎드러졌거든 바로잡아 주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원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말입니다.

본성을 거스르는 이 명령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께서 그 결정의 동기로 제시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너희가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23:9).
하지만 먼저 겪어 본 경험만으로는 사람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당해 본 사람은 오히려 당한 대로 갚으며 삽니다.
시집살이는 대물림되고 군생활 내무 부조리는 반복됩니다.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은 이미 지나갔는데, 나는 그 값을 엉뚱한 이에게 청구합니다.
반복되는 죄악의 사슬을 끊는 힘은 겪어본 일에 대한 기억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죄성을 단절하는 힘은 오직 은혜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롬5:10).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상대편으로 만들어 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로, 덮어놓고 편들어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출23:7) 하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죄인들의 죄악을 눈감아 주시지 않으십니다.
죄악의 민낯을 모두 드러내어 폭로하시고 그 값을 치르게 하십니다.
하지만 책임질 능력이 없는 우리 대신 그 값을 치르셨습니다(롬3:26).
편드는 것은 책임지지 않고 값을 훔치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를 도우신 것입니다.
값을 대신 치르고, 진정한 신랑, 남편이 되어 주셨습니다(롬 8:31).
“그와 함께 바로잡으라” 하신 그분이 친히 우리와 함께 짐 아래로 들어오셨습니다(마 1:28).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사 53:4) 그 곁을 떠나지 않으시며 우릴 도우셨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역시 받은 대로 돌려주며 삽니다.
사랑을 받고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았기에,
당한 것을 돌려주던 인생에서 은혜로 돌려주는 인생이 됩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 전화기를 들고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을 찾아 헤메는 대신,
영원히 내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그분의 도움 앞으로 나갑니다.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입었다면,
우리는 불리해져도 진실을 말하고,
손해를 볼지라도 약한 이의 짐을 함께 지며,
원수의 곁에 서서 무너진 것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내 편 만들기를 내려놓고 원수의 어깨 옆에 서 있어 줄 때 상대는 원수가 아닌 형제가 됩니다.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형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내 편을 모으다 지친 우리를,
주님은 원수를 형제로 바뀌는 자리로 데려가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