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증거궤를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후에,
두 번째로 만들 성막의 기물로서 식탁을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조각목에 순금을 입힌 작은 상을 만들고,
그 위에 열두 개의 떡과 유향, 대접과 병과 잔을 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떡을 “항상 내 앞에” 두라 명령하셨습니다(출25:30).
그래서 이 식탁은 이동 중에도 ‘항상’ 떡과 잔이 놓인 채 천과 가죽으로 감싸서 이동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이 식탁을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증거궤 다음으로 명령하시며 ‘항상 내 앞에’ 두라 하실 만큼, 이 식탁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시기 때문일 리는 없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이 식탁은 하나님께 진상하는 제사상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 부분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식탁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상 위의 대접과 종지와 병과 잔은 모두 복수형입니다.
적어도 이 상은 혼자만을 위한 식탁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진설병상은 혼자가 아닌 함께 먹는 식탁입니다.
이 식탁 위에 차려지는 떡을 ‘진설병’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로는 <레헴 파님>, 직역하면 ‘얼굴 빵’이라는 뜻입니다.
즉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교제로서의 식사가 이 식탁의 의도입니다.
그렇기에 이 거룩한 식탁 위에 진설되는 열두 덩이의 빵은
하나님 얼굴 앞에 이스라엘 열두 지파 몫으로 드려진 것으로서,
하나님은 그들의 얼굴을 대면하시고 함께 식사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합니다.
마치 출24에서 열두 기둥을 세웠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하나님을 뵙고 그 앞에서 먹고 마셨던 그때처럼 말입니다.
그때 보았던 ‘청옥 같이 맑은 하늘’ 처럼 푸른색 천이 진설병 상의 식탁보가 됩니다
다시 말해 진설병상이란,
시내산에서의 그 날 그 만찬이,
시내산을 떠나서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한 기물이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매 안식일마다 새로운 얼굴 떡을 하나님께 진설하고,
물려 낸 떡은 거룩한 곳에서 먹었습니다.
이때 진설병과 함께 드려졌던 유향은 기념물로서 하나님께 화제로 드려집니다.
유향의 향기는 하나님께 올라가고 떡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니,
이 상은 실로 하나님 드시라고 차린 제사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나온 사람을 먹이시려고 차리신 식탁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대로라면, 아무나 이 떡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얼굴을 대면하길 원하시지만,
정작 그 식탁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제사장뿐입니다.
제사장들만이 이 얼굴 빵 식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출24의 장로들은 제사장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뵙고 식사하는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러고 보면, 훗날 다윗과 그를 따르는 청년들도,
안식일에 이 진설병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이 아니었음에도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얼굴 빵을 먹은 것입니다.
출24의 장로들과 같이, 다윗과 청년들은 모두 이 진설병의 식탁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이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먹고 마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될 것임을 기대하게 하는 단서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된 백성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먹고 마실 수 있도록
그들을 모두 제사장으로 삼아 주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계획은 십계명을 수여하시기도 전에 먼저 선포하신 바였습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출19:6).
하나님은 처음부터 백성 전체를 그 식사 자리에 앉히실 길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길은 훗날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된 사람들마다,
그의 의와 아들됨과 죽음에 참여하게 되고,
왕이자 제사장이신 그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벧전2:9).
제사장이 아닌 다윗이 안식일에 물려낸 얼굴 떡을 받아먹을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그를 십자가의 길을 통해 세워진 제사장으로 여겨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안식일에 얼굴 떡을 먹을 수 있는 제사장이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요6:35).
그렇기에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먹는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고후4:6)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처럼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그 영광의 광채를 보는 것입니다(고후3:18,고전13:12).
이 식사에 초대받은 성도들의 얼굴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으로 가득 찬 환희의 표정이 비칠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서로의 얼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얼굴 떡은 혼자 먹는 떡이 아닌 것입니다.
예배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함께 먹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서로의 얼굴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보는 식탁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요일4:12).
예배는 함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기쁨의 식탁 교제,
곧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먹이시고
우리 얼굴에 그리스도를 아는 영광의 빛으로 가득 빛나게 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