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이 없는 성막 안에는 대낮에도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증거궤가 놓인 지성소는 어둠이어도 문제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이 없다고 보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시지요.
하지만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소에 순금 등잔대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단순히 빛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등불만 세워두면 되었을 텐데,
하나님은 굳이 꽃이 피고 가지가 뻗어 나가는 살구나무의 모습으로 등잔대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한 줄기에서 여섯 가지가 뻗어 나오고, 가지마다 살구 모양의 잔과 꽃받침과 꽃이 있습니다.
꽃이 열매를 맺고 그 씨가 새로운 나무로 생명을 이어가듯,
꽃받침마다 뻗어 나오는 가지는 마치 하나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뻗어 있는 생명의 끝자리에 아몬드 열매 같은 일곱 등불이 빛을 발합니다.
성소에 빛을 열매 맺는 나무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필 하나님께서 성막 기물들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조각목이 아닌,
살구나무의 모습으로 등잔대를 만들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구나무라는 단어에는 지켜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언어유희적 상징으로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훗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살구나무 가지를 보여주시며
‘살구나무’처럼 자신의 말씀을 ‘지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구나무 <샤케드>와 지킨다는 뜻의 <샤카드>를 언어유희적으로 연결하여,
자신의 약속을 귀뿐 아니라 눈으로도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살구나무를 닮은 등잔대의 불빛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지키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제사장은 이 등잔대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새 돌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심지어 광야에서 이동할 때도 제사장들은 이 불꽃을 지켜야 했습니다.
등잔대는 보자기로 싸서 운반했지만, 제단의 불씨는 화로에 옮겨 보존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꺼져가는 불꽃을 끄지 않고 지켜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거처에 장막이 세워질 때면 하나님의 불꽃은 또다시 등잔대로 이어져 성막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마치 씨앗이 땅에 심기웠을 땐 죽은 듯이 보이지만 이내 새로운 나무로 그 생명이 이어가듯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 사이로
인자와 같은 이가 거니시는 모습으로 예수님을 묘사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등잔대가 꺼지지 않도록 그 불을 지키시고 기름을 공급하시는 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불빛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하여 기름을 채워야 했듯,
주님은 교회에게 성령을 채워주십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환상 속에서 본 등잔대에는
금을 피처럼 흘리는 두 감람나무가 관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기름을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이 환상에 대해 하나님은 그것이 사람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야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으로 교회를 채워 하나님의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시는 일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하신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이 무슨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는지를 우리로 알게 합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약해지고 지쳐서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을 때에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찬란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지키시는 제사장의 손이 신실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모세가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나무는 잿더미로 타버리지 않았던 모습과 같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떨기나무 안에서부터 타오르시는 거룩한 불꽃이었기 때문입니다.
등잔에 불빛이 타오를 때 그건 심지가 타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를 타고 올라온 연료가 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빛나는 것은 우리의 열정이 대단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의 열심을 태워 빛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성령께서 그 생명을 우리 가운데 공급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이 태우시는 불로 말미암아 빛내며 타올라야 합니다.
등잔대 앞에 놓인 성소의 공간을 비추어
어두워져 가는 세상 속에서도 맞은편 식탁에 놓인 하나님의 얼굴 떡을 먹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그리스도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빛이 꺼지지 않도록 밤새 교회를 지키십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낮에와 같이 단정히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키십니다.
사람은 밤이 되면 눈을 감지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잠든 밤에도 하나님의 집에는 불빛이 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병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슬픔 속에서 마치 하나님의 얼굴 반대편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지 못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의 눈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졌던 시대에도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은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주님은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십니다.
예수 믿으세요.
어둔 밤,
주님은 별빛처럼 빛나는 등불로 우리를 태우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