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한가운데 흰 울타리가 쳐졌습니다.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든 세마포 포장입니다.
높이 다섯 규빗의 2.25m 울타리 너머로 해달 가죽을 덮은 거무튀튀 장막이 솟아 보입니다.
성막의 높이는 열 규빗, 울타리의 두 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막을 가리려 했다면 울타리를 더 높게 쳐야 했을 것입니다.
즉 흰 천이 가리려는 것은 성막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대체 무엇을 가리려고 이 흰 울타리를 세우게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번제단 제작을 명령하신 후,
그 제단을 놓을 뜰을 세마포 울타리로 구획하게 하셨습니다.
뜰에서는 매일같이 짐승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피가 흐르고 불길이 치솟고, 제물을 태운 재가 버려졌습니다.
뜰은 제사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뜰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제사장만이 아니었습니다.
제물은 백성이 직접 잡아야 했기에, 성막 뜰은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였습니다.
그런데 속죄받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은 아직 거룩하고 정결한 상태가 아닙니다.
다시말해 성막 뜰은 정결하고 거룩한 사람들만 왕래하는 곳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막 문 앞, 즉 뜰 문을 지나 번제단이 놓여 있는 바로 이 뜰에서
자기 백성을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 29:42).
그 백성이 정결하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은 이 뜰에 들어오는 이들을 내쫓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이 정결하든 그렇지 않든, 이 뜰에 들어오는 이들을 내쫓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울타리가 가린 것은 성막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온 사람들의 현 상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이 뜰에 들어와 제물을 드리고 부정함에서 정결함으로,
정결함에서 거룩함으로 구별되기까지 눈감아주시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번제단에 닿지 못하고 죄를 해결하지 못해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설 자격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막 뜰을 둘러싼 흰 세마포는 제사장의 옷으로도 사용되는 천입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화려한 에봇을 벗고 거룩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레 16:4).
번제단에서 제물이 모두 타고 남은 재를 거둘 때에도 제사장은 세마포 옷을 입었습니다(레 6:10).
신약성경의 주요 장면에서도 세마포가 발견됩니다.
번제단에서 하나님의 불꽃으로 모든 것을 태우고 남은 재처럼,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모든 것을 태우시고 남은 예수님의 시체를
아리마대 요셉이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안치하는 장면입니다(마 27:59).
제단에서는 죄인을 대신해 짐승이 죽었지만, 십자가에서는 죄인들을 대신해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습니다.
번제단에서 타고 남은 재를 거두던 제사장의 세마포와,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감당하시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몸을 감싼 세마포가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혀주신 것은 죄를 감추는 가리개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등장합니다.
그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설명됩니다.
신부가 스스로 만들어 입은 옷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입도록 허락하신 옷입니다(계 19:7,8).

하나님은 뜰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상태가 아닌, 뜰 문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상태를 기대하시며,
뜰을 세마포 울타리로 가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뜰의 문을 넘어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결코 빈손으로 나아올 수 없었습니다.
뜰 문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제물을 가지고 와야 했습니다.
그래야 번제단에 그 피를 쏟고 제물을 불태워, 속죄함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구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뜰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다양할지라도, 뜰 문을 나서는 사람은 모두 정결하고 거룩하기를 주님이 원하시기에,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마당을 밟는 순간을 가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바로 그 점이 훗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하시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자 함이 아닌,
하나님을 사용하기 위해 형식적인 제사만을 반복하는 이들을 향하여 분노하십니다.
그들은 제물의 피를 흘리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죄에서 돌이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성전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를 구원의 보증으로 여겼습니다(렘 7:4).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이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맹목적 제사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기에
제단을 통과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저 뜰만 밟을 뿐이라며(사 1:12) 책망하십니다.


오늘날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도 정결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발견할 때마다 실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은혜로 옷 입고 죄악이 가려진 사람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이끄심을 받는 참된 성도는 자신의 죄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뜰만 짓밟고 돌아가는 이들이 되지 않도록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제단을 만나게 하십니다.
날마다 그 죄를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 죄를 가려주시고,
오늘도 십자가 앞에 나아갈 담력을 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