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불변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이 수정되거나 폐기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과 명령은 완전하신 하나님을 따라 완전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게 불변하시며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선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연약하고 타락한 모든 죄인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앞에서 그 존재의 미천함을 견디지 못하고 불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이삭을 세우라고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사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앞에 서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결국 모두가 서게 될 자리이긴 하지만,
이삭에겐 인생의 마지막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기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사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언약을 세우시고 민족을 이루시며 약속의 땅을 얻게 하시겠노라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삭이 하나님의 진멸하심 속에 불태워져 죽게 된다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함께 실패하게 되어 폐기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해 멈춰 세워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지 알 수는 없어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한 가지도 실패함 없이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통해 태어날 후손들이 민족을 이루고 땅을 얻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설령 이삭이 죽음에 던져진다고 할지라도 죽음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리라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주저함 없이 아침이 밝자마자 모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사흘 길을 지나 모리아산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은 침통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칼을 들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불러세웠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멈춰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사자가 멈춰 세운 것은 아브라함이었지 완전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은 취소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멈춰 세운 것은, 이제부터 그 역할을 본인이 담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부터 이미 보여주셨던 작정하심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의 명령과 아브라함 사이에 뛰어들었던 것은,
반으로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를 횃불처럼 홀로 지나가시며 ‘네가 아닌 내 몸을 찢어서라도 반드시 복 주시겠노라는 약속을 이루시겠다.’ 맹세하신 이유였습니다.
모리아 산의 나무에 걸린 숫양은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브라함의 아들을 대신해 희생하기로 하시는 약속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발견하고 이삭을 대신해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숫양과 이삭의 가치가 같을 순 없음에도 아브라함의 번제를 온전한 순종으로 받아주셨습니다.
단순한 숫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대신하실 것임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이 반드시 성취되도록 준비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국어 성경에서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훗날 동일한 바로 그 산, 그 장소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비로소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바라보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