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주일을 부활의 기쁨 속에서 맞이하지만,
특별히 부활절과 고난주간 어간이 되면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겨보곤 합니다.
시편 22편은 다윗의 시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가장 직접적으로 예언한 놀라운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시편 22편의 첫 구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외치신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는 다윗의 실제 경험을 훨씬 넘어서는 극단적인 고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22편은 단순히 다윗의 개인적 경험으로 볼 수 없습니다.
다윗은 ”땅의 모든 끝, 모든 나라, 모든 족속이 돌아오고 예배하게 될 것”이라며
진토에 묻히는 죽음의 경험과 고난이 전 세계적인 구원으로 이어질 것임을 감히 장담합니다.
이는 다윗 개인의 고난이 아닌 메시아의 고난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다윗은 선지자로서 그리스도를 미리 보고 예언하였다”고 말했듯,
다윗은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의 고난을 상회하는 더 큰 고난, 더 큰 하나님의 버림,
영원한 나라로 이어질 더 큰 구원을 겪을 메시아의 죽음에 대해 예언한 것입니다.
시편 22편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극적인 전환이 있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마치 전혀 다른 두 개의 시가 붙어있는 듯합니다.
1-21절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의 처절한 울부짖음이지만,
22-31절은 갑자기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바뀝니다.
이 극적인 전환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사실 우리의 삶에도 다윗과 같은 극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느끼며,
하나님의 침묵에 무겁고 아픈 고독을 경험합니다.
경제적 어려움, 건강의 위기,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관심도 흥미도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세상 소망과 함께 열정도 덩달아 끊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예수가 내 삶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걸로 동기를 삼아 결국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겠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면 앞으로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과 무기력을 어떻게 찬송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고난에 고통스러워하던 다윗의 시가 찬송으로 극적 변화를 일으키게 된 이유는
다윗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직접적으로 체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시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분위기만 극적 반전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시의 시점까지도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반부의 ‘나’와 후반부의 ‘나’는 실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의 ‘나’는 전반부의 ‘나’를 ‘그’라고 부릅니다.
전반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시점이고,
후반부는 이를 목격한 다윗의 시점인 것입니다.
다윗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삼인칭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일인칭으로 기록한 것은,
그가 단순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이 예수님의 시선이 되어 함께 십자가에 달리는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체험이 있었기에 다윗은 극적으로 주를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찬송으로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윗처럼 십자가의 죽음에 우리가 연합하는 것뿐입니다.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갈2:20)이 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에서 주와 함께 죽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주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세상의 소망이 꺼진다고 해서 우리의 열정까지 함께 꺼질 필요는 없습니다.
시편 22편 26절은 “그를 찾는 자들은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약속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 소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십자가 위에서 녹여내셨습니다.
열정이 사그라지는 것은 모든 것이 가치 없게 느껴질 때 일어나는 일이지만,
모든 것이 주를 위한 것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면 열정도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하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인칭으로 경험하고 체험해야 할 살아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경험이 우리를 고통에서 찬양으로, 무기력에서 열정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처럼 “내가 내 형제들에게 주의 이름을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우리의 시각을,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우리 삶을 고난의 고통이 아닌 찬송이 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