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름을 짓는 일에 많은 정성을 들입니다.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아이가 살아갈 평생의 정체성을 담는 것이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존재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사람의 명성과 성품, 그가 이룬 일들까지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더욱 특별합니다.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예흐예 아셰르 예흐예)’로 소개하신 하나님은,
창조주로서의 무한한 권능과 구원자로서의 찬란한 영광을 그 이름 안에 모두 담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에는 그분의 영광과 능력과 사랑과 은혜의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크기와 너비와 깊이와 무게의 전부가 고스란히 실려있습니다.
그렇기에 십계명의 제3계명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히 언어 습관을 교정하라는 도덕적 훈계나,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규범적 요구나,
진실한 예배 태도의 호소 정도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우리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무거운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부르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나사’는 본래 “들어 올리다”라는 뜻입니다.
말하다를 뜻하는 ‘아마르’도 아닌,
예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쓰이는 ‘카라’도 아닌,
맹세를 뜻하는 ‘샤바’도 아닌,
심지어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올려 보여주는 의미로써 사용한 ‘룸’도 아닙니다.
‘나사’는 모세오경의 맥락에서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짊어지고 이동하는 장면, 성막을 들어올려 세우는 장면에 사용됩니다.
히브리어 ‘룸’이 들려져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상태 동사였다면,
나사는 들어 올리는 행위 자체에 초점을 두는 동작 동사입니다.
즉 ‘나사’는 어깨로 하중을 견디며 짐을 들어 올리고 짊어져서 옮기는 노동의 단어입니다.
또한 ‘망령되게’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브’는 내용물이 텅 비어 있는 공허함과 허무함을 뜻합니다.
즉, 이 계명을 직역하자면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텅 빈 채로 짊어지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호와의 이름에 무궁한 영광을 덜어냄 없이 온전하게 짊어지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의 무게와 책임을 모두 감당해내야 한다는 명령인 것입니다.

군대에서 행군을 앞둔 군인들 중 ‘완전 군장’이 아닌 ‘가짜 군장’을 꾸리는 병사들이 종종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40kg에 육박하는 완전 군장을 갖춘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안에 플라스틱 통이나 박스를 넣어 부피만 부풀린 가짜 배낭을 짊어집니다.
겉모양은 군인이지만, 실제로 군장이 담고 있어야 할 생존의 도구와 책임의 무게는 텅 비어 있기에
가짜 군장을 맨 군인을 참 군인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짖고, 주일마다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정작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그 이름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
사랑과 은혜의 무한하고 거대한 무게를 전혀 받아 들지 않고 짊어지지 않고
내 삶의 어깨로 전혀 감당하지 않으며, 그저 가벼운 생각들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샤브(텅 빈 채로)’하게 ‘나사(짊어지는)’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20킬로짜리 역기도 못 드는 사람이 2톤짜리 역기를 들 수 있겠습니까?!
일주일에 한시간,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그 무게감을 감당하지 않으려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영광의 충만함이 온전하게 짊어지게 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 영광의 무게에 짓눌려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 누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그 영광의 무게를 온전하게 짊어지고 들어 올려 감당해 낼 수 있을까요?
오직 단 한분,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그 영광의 성취를 끝까지 짊어지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 받는 종이신 예수님을 향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고(나사)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한 치의 훼손도 없이 이 땅에 나타내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죄의 무게와 사망의 짐을 우리 대신 친히 어깨에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사실 마지막 순간 골고다를 향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신 그 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인생 전체가 십자가에 달리기 위한 수고와 헌신의 골고다 길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완성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그 영광의 무게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 하나님은,
부족하나마 진심으로 하나님 이름에 달린 영광의 무게를 감당하고자 그 멍에를 짊어지려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셨던 십자가를 그 어깨에 지워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주를 쫓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을 짊어지는 삶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때로는 손해를 보아야 하고, 때로는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경외함’은 그 무게조차 기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의 그 벅찬 감동과 조심스러움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나로 인해 실추될까 두려워하면서도 그분을 모시고 산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그 경외함이
제3계명을 완성하게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를 사랑함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며
감히 그 이름을 짊어지려는 이들에게,
주의 멍에는 무거운 징벌적 구속구가 아니라, 주가 대신 들어주심으로 인한 가벼운 날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