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에 휩싸인 시내산에서 멀어지려는 백성들의 뒷걸음질과는 반대방향으로,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해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정의와 진노의 불꽃이 단 한 점도 닿지 않는,
그래서 마치 은혜의 그림자와도 같은 흑암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흑암 속으로 들어온 모세를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할 규례들에 대한 말씀들을 쏟아놓기 시작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이 가장 먼저 언급하신 규례는 바로 토단에 대한 규례였습니다.
신상, 곧 하나님을 비긴 형상을 만들지 말고 대신 흙으로 제단을 만들라는 명령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그 음성으로써 십계명을 선포하신 이후,
자신의 선지자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불러 구체적 규례들을 명령하신
특별한 사건의 첫 명령이 토단이었다는 점은 참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하필 토단이었을까요?
믿음의 선조들이 늘 쌓아 오던 그 평범한 토단이,
구속사의 유비와 상징의 정점인 성막과 번제단보다 앞선첫 번째 명령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 하나님은 직접 2계명의 말씀을 실마리로써 제시해 주십니다.
2계명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형상이 아닌 제단을 요구하신 이유를 짐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른 형상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흙으로 자신의 형상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기에 그 첫 사람의 이름을 흙이라는 뜻의 아담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이나 은으로 형상을 만들지 말고 흙으로 제단을 만들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우리는 2계명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흙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기능과 목적은 바로 제단인 것입니다.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흙으로 만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드릴 예배의 처소, 토단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토단으로 빚어지기 위해, 하나님은 3가지를 상기시키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제단에 사용할 돌을 칼로 다듬지 말라고 하십니다.
칼이라는 히브리어 ‘헤레브’가 사용된 가장 가까운 문맥은 르비딤에서 아말렉과의 전투 장면입니다.
전쟁의 승리를 자신들의 칼, 곧 수고와 노력의 분투와 그 공로라고 여기지 않도록
하나님은 모세의 손이 들어 올려져 있는 동안에만 이기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승리를 하나님의 붙잡아 주심이었음을 기념하는 제단을 쌓았었습니다.
그 제단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제단은 이와같이 만드는 이의 분투와 공로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제단에 계단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단은 올라간다는 뜻의 번제로써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향기가 올라가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제단에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재물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번제로써 오직 제사와 예배를 올리는 제단에, 하나님만이 높임 받으셔야 하는 제단에 계단을 만든다는 것은,
예배를 디딤돌 삼아 자신도 그 영광의 자리에 ‘함께’ 올라서고 싶어 하는 죄인의 염원을 신랄하게 드러냅니다.
높은 자리에 서야만 주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핑계로써 제단을 밟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서려 합니다.
토단의 물리적인 높이가 대단하지 않을지라도
신앙생활을 자신을 위한 발받침대로 사용하려는 이들에게 토단의 계단은 이미 바벨탑입니다.
제단에 재물이 올라가면 그 가죽이 모두 벗겨지고 불태워지듯,
제단에 재물이 아닌 사람이 올라가게 되면 그의 모든 죄악들이 벌거벗겨지고 수치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두기로 하시는 모든 곳에 토단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하나님은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요구하셨습니다.
번제단에서가 아닌 자신들의 동네 뒷산에 제단을 만들어 놓는 산당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가증히 여기시고 진노하십니다.
그렇다면 토단과 산당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토단을 만들라고 명하실 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정한 장소에 토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로 그것이 산당과 토단의 차이였습니다.
산당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토단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곳에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토단의 제작이란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두기로 결정하시는 곳, 그곳이 토단이 되어야 합니다.
훗날 하나님께서 번제단이 아닌 다른 곳에 자신의 이름을 두고 토단을 쌓게 하신 장소는 에발산(신27:4,5)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먼 훗날, 바로 그 산을 바라보며 한 여자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어느 곳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습니까? 이 산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도 아니고, 저 산에서도 아니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라구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겠다” 던
출20:24의 약속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 대신 제단에 오르시고 수치를 당하신 그분의 벗겨지심 때문에, 우리가 가려짐을 얻은 덕분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예배하는 이들의 모든 삶을
모든 시간과 모든 장소에서 자신의 예배 처소,
곧 칼도, 층계도 없는 토단인 교회로 빚어주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