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십계명의 제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윤리적 지침이나 유교적인 효의 관점으로 이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명령하는 공경은 단순한 도덕적 의무를 넘어,
창조의 질서와 구원의 신비가 맞물리는 ‘경첩’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향하도록 요구하시는 본분을 다루고,
5~10계명은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을 향하도록 요구하시는 본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1~10계명 모두가 하나님을 위한 것들이지만, 하나님을 위해 행해야 할 방향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해 사람을 향하여 요구하시는 본분 중 첫 번째 계명을 왜 부모 공경으로 시작하셨느냐는 점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인간이 태어나 처음 만나는 타자입니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언어를 배우고, 질서를 배우고, 사랑과 통제를 동시에 경험합니다.
그렇기에 자녀가 처음 만나는 부모의 권위는 모든 관계의 원형이 됩니다.
부모의 권위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세상의 모든 권위를 대하는 방식까지 드러내게 됩니다.
다시 말해 부모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이웃에 대한 태도를 동시에 비추는 거울인 것입니다.
이 5계명을 온전히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5계명은 부모의 말을 단순히 잘 듣는 ‘순종(샤마)’이나,
부모를 두려워하는 ‘경외(야레)’로 하나님의 요구를 표현하지 않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에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카베드’는 본래 “무겁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무겁다는 것은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쉽게 밀어낼 수 없고, 쉽게 잃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 속에서 “무거움”은 곧 가치와 중요성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소중하다”, “귀중하다”, “비중 있다”는 표현을 씁니다.
모두 ‘무게’의 언어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언어 안에서 무거움은 곧 가치의 표현입니다.
카베드의 명사형인 ‘카보드’가 하나님의 “영광”을 뜻하는 대표 어휘라는 사실은 이를 확증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곧 하나님의 존재적 무게감인 것입니다.
5계명은 그 영광의 무게를 부모에게도 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부모를 내 삶의 주변부로 밀어내지 말고 그 존재의 무게를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무게는 관계의 역학에서도 중력처럼 작동합니다.
하나님을 태양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그 중력 안에서 궤도를 도는 지구와 같습니다.
압도적인 무게감이 관계에 깊은 영향을 끼쳐 그의 말씀과 영향력을 벗어나지 않게 하고 그의 통치 아래 살아가게 합니다.
문제는 인간의 죄성이 바로 이 “무게”를 싫어한다는 데 있습니다.
죄인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치는 누군가의 무게감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충고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권위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결국 관계의 무게감, 권위의 무게감을 벗어나려 합니다.
인간의 첫 범죄는 바로 이 “무게의 부정”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고 뱀의 말에 더 비중을(무게를) 둠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일 하나 따 먹은 사건으로 폄하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으로, 가장 큰 무게감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선언적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밀려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궤도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생명의 근원에서 단절되고, 안식의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아담과 같이, 아담과 함께 은혜의 궤도에서 이탈한 비참한 운명이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죄성의 패턴이 모든 관계의 원형인 부모와 자녀 관계를 통해 가장 먼저 반복된다는 점에서 발견됩니다.
자녀는 성장할수록 독립을 준비하며 부모의 무게를 줄여갑니다.
그러나 독립을 향한 자라남이 곧 부모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 될 때,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추락이 되고 맙니다.
권위를 무너뜨린 자리에는 자유가 아니라, 방향을 잃고 헤매는 표류의 삶만이 남게 됩니다.
그러나 복음의 시작은 바로 그렇게 어긋나버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하나님)의 무게를 끝까지 인정하신 유일한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무게로 인한 궤도를 한 번도 이탈하지 않으신 유일한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뜻보다 아버지의 뜻 아래 자신을 두셨고, 십자가에서도 그 순종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그 ‘무게의 질서’를 회복하셨을 때,
하나님은 5계명의 약속이었던 생명과 땅을 그에게 상속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약속한 이 상을 받으신 유일한 사람이 예수셨기에,
하나님은 약속한 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망에서 일으키셨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성령의 연합으로 자신의 아들 됨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안에서 생명과 안식의 새 땅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부모를 무겁게 여길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중력권 안으로 안착하게 됩니다.
그 궤도 안에서만 우리는 방황을 멈추고 참된 안식과 약속된 땅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부모 공경은 단순한 효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인생의 중심이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부모를 무겁게 대함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 된 자들의 신앙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궤도를 유지하는 무게가 되어주실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