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갑자기 몸이 안 좋다며 드러누운 12살 딸은 밤새 사경을 헤맸습니다.
정신을 잃고 급격하게 생기를 잃어가는 딸을 위해, 야이로와 아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야이로는 딸아이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 오직 예수에게만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울고 있는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반드시 예수님을 모시고 오겠다며 약속하고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텅 빈 호숫가에 홀로 서 있는 야이로는 타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예수님은 호숫가에 사람들이 가득해질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가 전날 밤 거라사인들의 지역에 다녀오느라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그의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을 때쯤,
드디어 예수님의 배가 선착장에 다다랐습니다.
야이로는 배에서 내리시는 예수 앞에 엎드려 딸을 살려달라며 간절히 빌었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은 흔쾌히 야이로를 따라나섰습니다.
딸을 살릴 일말의 가능성이 피어올랐습니다.
타들어 가는 아버지의 마음에 야이로는 일행들보다 앞서나가며 길을 텄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예수님 일행을 돌아보며 무언의 재촉을 하던 것이 몇 번일지 모를 겁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뒤따르던 일행들은 웅성거리다 별안간 멈추어 서버렸습니다.
황급히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온 야이로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멈춰 서신 것은 군중들 속 누군가가 그의 옷자락을 만졌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야이로는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몰려든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 옷자락 한번 만져보려고 시도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방금까지도 사람들은 서로 밀고 밀리며 예수님 곁에서 그의 옷자락 한번 만져보려고 난리였음을 야이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만진 옷자락인데, 누가 한 번 더 만진들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이렇게 위급한 순간에 한가롭게 누가 옷을 만졌는지 색출하고 있는 이유를 야이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한 여자가 나서서 자신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람이라며 12년간 앓아왔던 혈루증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야이로의 마음은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람들이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12년간 앓아왔던 질병이라면 한두 시간 치료가 더 늦춰진다고 달라질 게 없을 텐데도
늑장을 부리시는 듯한 예수님이 야이로는 야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이분이 우리 딸의 생명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건가?
생명과 무관한 만성 질병보다 촌각을 다투는 내 딸의 응급 상황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별거 아닌 질병을 두고 과장되게 거짓말하여 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이분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있었을까?
혹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일부러 늑장 부리시는 건 아닐까?’
야이로의 마음은 정리할 수 없는 생각들로 복잡해졌습니다.
그 순간, 상심한 야이로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야이로의 야속함과 의심이 원망으로 변할만한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아직 혈루증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야이로는 예수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던 분이지만
그 이후로는 죽은 이를 살려내신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대로 끝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오는데,
갑자기 야이로의 어깨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혈루증 여인에게 모든 관심을 쏟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계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야이로를 이끌고 그의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례식을 치르려 몰려든 사람들에게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사람들을 내쫓으시고 제자 셋과 야이로 부부만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 이미 죽어버린 소녀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시신을 만지는 것은 매우 심각한 부정을 입는 일이었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부정함을 정결하게 하셨던 예수님이 사망의 부정함마저 거룩하게 바꾸셨습니다.
소녀는 잠에서 깨듯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죽음이 닿자, 사망이 소녀를 넘어가 버린 것입니다.
“믿기만 하라”던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요구하신 믿음이란
이미 혈루증 여인에게 보여주셨던 바로 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지체되어 보였던 그 모든 일은 야이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전능하신 그분께는 늦었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에는 무관심이란 개념이 없습니다.
주께서 내 인생에서 지체하시는 것 같을 때, 믿음은 그때 필요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조금 더딜지라도, 더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시며 야이로의 딸처럼 우리 인생의 손을 잡고 이끌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