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점심시간에 친구와 함께 만화책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만화책 하나에 머리를 맞대고 어깨를 부딪치며 웃을 만큼 만화는 너무나도 재미있었습니다.
종이 울리고 함께 만화책을 보던 친구와 이동수업으로 자리를 옮기며, ‘우리 쉬는 시간에 마저 함께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함께 보던 페이지를 접어놓고 서랍에 만화책을 넣어놨습니다.
수업 시간 내내 마음은 온통 ‘이후에 어떻게 스토리가 진행될지’ 만화책에 쏠려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만화책을 꺼내고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심부름을 하러 간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다음 쉬는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의 이야기가 또 얼마나 재미있을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친구가 일찍 돌아오면 보던곳 부터 다시 보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만화책을 펼쳤습니다.
만화는 분명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까만큼 신나고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분명 흥미롭고 미소가 나오는 재미였지만, 박장대소까지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분명 아까는 훨씬 웃겼는데?!…’ 생각이 이에 이를 때쯤 친구가 돌아왔습니다.
친구는 혼자 만화를 먼저 보고 있는 저를 보고 실망했습니다. “같이 보자니까 아 왜 먼저 봐~”
미안하다고 친구를 달래며 다시 만화책을 피면서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만화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만화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랑 함께 보았기에 재미있었다는 것을.


이후로 저는 가끔씩, 그 시절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만화책을 보던 일이 생각납니다.
‘오늘 영화가 재미있었던 것은 영화 때문일까? 함께 보며 즐거워하던 사람들 때문일까?
그 음식이 맛있었던 것은 정말 오롯이 음식 때문이었을까? 함께 했던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와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게 됩니다.
그럴 때 제 마음의 답은 거의 같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밤늦도록 티비 앞을 못 떠납니다.
하지만 야구는 뭐니뭐니해도 티비로 보기보다 야구장에서 봐야 재미가 있습니다. 왜일까요?
국가대표 축구 경기는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혹은 생판 모르는 사이일지라도 광장에 모여 보아야 재미있습니다. 왜일까요?
집에 컴퓨터가 있는데도 왜 아이들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걸까요?
그것은, 혼자 해도 재미있지만 함께 할때가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고 하지만 제 경험 상 같이 먹는 떡이 훨씬 맛있었습니다.


가끔씩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때도 이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내가 말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대화의 주제가 흥미롭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상대방과 함께 있는 것이 좋은 걸까?’ 
여러분은 야식 좋아하시나요?
우리는 정말 치킨을 좋아하는 걸까요? 치킨을 함께 뜯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예배당에서 예배의 감격에 마음이 벅차오를 때, 저는 그때 생각이 떠오릅니다.
함께하기 때문에 좋습니다.
성경도 함께 볼 때에 재미있습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좋은 걸 보면 그걸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왜 개척을 했을까?’ 잠잠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대답도 같습니다.
함께하고 싶어서.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함께 할 때 재미있습니다.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함께하고 싶습니다.
뉴시티광염교회가 성도들의 기쁨과 즐거움과 슬픔에 함께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7월 3일 금요 기도모임 중에 행복한 뉴시티광염교회 성도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