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의 사용 방법과 용도는 후에 따로 정리해서 글을 올리겠습니다. 
일단 먼저 3월15일 첫 주일 예배 설교 때 함께 나눌 마태복음 말씀을 연구하며 떠오르는 질문들을 공유합니다. 
사랑합니다.

Q : 13절,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가?
흔히 변하지 않는 언약을 소금언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시간이 지나면 소금의 화학구조라도 바뀌는 것일까?

Q : 13절,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라는 표현은
음식을 짜게하는 것이 소금 밖에 없기에 대체품이 없어 곤란해진다는 말일까?
소금의 역할은 대체 불가라는 말인가?
번역된 문장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우리도 대체 불가의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해해도 되는 것인가?

Q : 왜 하필 산위의 동네일까?
바닷가 동네는 해당이 안되는 것인가?
한국에서는 도시가 주로 평지에 있지 않던가?

Q : 14절과 15절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 는것은 ‘숨김’인데,
‘빛을 숨기지않고 드러내야 한다’는 내용이
‘소금이 맛을 잃은 것’과 어울리는, 같은 결의 비유가 맞는가?
소금의 짠 맛은 숨기려고 해서 숨겨지는게 아니지 않은가?
찌개를 덜 짜게 끓일순 있어도 소금을 덜 짜게 할 수 있는가?
소금과의 대조를 생 각해보면, 연료가 없어 불이 꺼지는 등불로 이야기 했어야 더 적합한 비유가 아니었을까?
왜 도시의 불빛을 비유로 드셨을까?

Q : 본문의 앞 문맥이 산상수훈인데, 문맥 상 이어지는 메시지의 흐름이 있을까?
문맥 안에서 이해할 때 기존에 알 던 내용과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Q : 16절,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시는데,
결국 본문은 착한 행실을 독려하는 내용인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꼭 소금과 빛을 비유로 사용하셔야 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

Q : 우리가 소금의 짠 맛을 회복하고 빛의 밝음을 회복 할 수 있을까?
소금이 스스로 짠 맛을 회복 할 수 있는가?

Q:뒤에 이어지는 문맥에서 등장하는 율법과 본문의 비유가 연관성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