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금요일 기도모임에서 나누었던 돌아오는 주일 본문의 더 깊은 성경연구 질문들 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4~30절 말씀에 대한 관찰 연구 질문들 입니다. 
성경도 함께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즐겁습니다. 
사랑합니다.

중복 질문들도 그대로 게시합니다. 
이 질문들 중에 중복된 질문이나 연계된 질문들은 합쳐서,
문장을 다듬어 주보에 게시합니다. 

14절 – 영어성경을 보면 25:1에 천국은 열처녀와 같고, 25:14에 천국은 어떤사람과 같다고 표현하는데, 천국이 ‘그 사람’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천국은 ‘그 상황’이라는 말인가?
14절 – 달란트는 큰 돈인가?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금액인가? 현시대적으로 계산한다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14절 – 주인이 그 재능대로 각각 금으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는데, 달란트의 의미가 무엇일까? 교회에서 하는 봉사를 말하는 것인가? 앞뒤 문맥과 30절을 보면 분명 구원에 대한 비유인데, 봉사와 구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14절 – 당시 종에도 차이가 있을까? 예를 들면 노예로서의 종과 청지기로서의 종은 같은가?
15절 – 각각 그 재능대로 금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종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하는데 그 나누어준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15절 – 그 재능대로 나누었다고 하는데, 재능의 기준은 무엇일까?
21절 – 달란트를 배로 남겼는데 적은 일에 충성한 자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23절 –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나와있는데, 24:47의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라는 말씀과 관련이 있는가?
24절 – 1달란트 숨겼던 종이 말이 많다. 말로 다 깎아먹는것 같다. 이 종은 왜이리 필요없는 말을 할까? 주인에게 왜 이리 분노가 있는 것일까?
24절 – 한달란트도 큰돈인데, 큰돈을 지원받아 놓고서는 왜 이리 불만이 많은가?
24절 – 심지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않는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렵다고 하면서, 이렇게나 혹독한 주인인데 그냥 묻기만 하고 무언가 하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주인의 성정을 알고 두려워했다면 단순히 묻는게 아니라 뭐라도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26절 –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긴” 것이지, 돈을 불려오라거나 다른 미션을 준 것이 아닌데, 5달란트 2달란트를 갑절로 불려온 종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고, 왜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된 것일까?
28절 – 왜 빼앗은 한 달란트는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돌아갔을까? 네 달란트 가진 자도 있는데… 능력위주의 편애인가?
29절 – 있는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자는 있는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셨는데, 이것은 없는자에게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아보인다. 왜 이렇게 천국을 비유하셨을까?
29절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고 주인이 말하는데, 주인은 정확이 누구인지?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성품같지 않은 구절인 것 같습니다.
29절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된다고 했는데,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30절 – 만약,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가진 종이 투자실패로 돈을 잃고, 오히려 한 달란트 가진 종이 돈을 지켜낸 결과가 되었다면 돌아온 주인의 반응이 달랐을까?
30절 – 한달란트 종이 장사를 해서 결과적으로 땅에 뭍었을때와 같이 본전이 되었어도 주인이 쫓아냈을까요?
30절 – 장사를 한다는 것은 이윤을 얻는다는 개념인가? 장사는 이윤이 날 수도 손해가 날수도 있는 것인데…
45절 – 23:45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25:21의 충성된 종. 25:2의 슬기로운 자와 같은 원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24:45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한 설명으로 두 비유가 사용된 것인가?
문맥 – “본문과 맥을 잇는 열처녀 비유에서
기름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나뉘었는데 예수님은 결론을 깨어있는것(13절)으로 말씀하시는 이유와 10절에서 문을 닫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