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0월도 3째주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룻기 설교도 3번째 강해입니다.
돌아오는 주일 함께 먹고 마실 하나님의 말씀 본문은 <룻기 1장 19절 ~ 2장 7절> 입니다.
아래는 각 가정에서 금요기도모임을 통해 성도들이 돌아오는 주일 말씀을 미리 연구하여 질문한 내용입니다.
말씀을 미리 살펴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는 주일 되기를 기도하며 공유합니다.
사랑합니다.
# 룻기 1장 19절 ~ 2장 7절
1:19 – 나오미 가족이 유명한가? 왜 이렇게 화제가 되었을까? 집안의 가장들이 떼로 죽었다는 너무 불행한 소식이 고향에까지 소문이 난 것일까?
1:20 –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라는 표현이 21절에도 비슷하게 반복되는데 왜 나를 괴롭게 하신 이한테는 전능자라고 표현했을까?
1:20 – 이름까지 나오미에서 마라로 수정하여 불러달라고 할 이유까지 있었을까?
1:20 – 나오미의 이름 뜻은 무엇인가?
1:20 – 출애굽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지만 도중에 ‘마라’의 쓴물 사건으로 괴롭다고 한 이스라엘 백성과
보리추수할 양식있는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징벌하여 괴롭게(마라) 하셨다고 고백하는 나오미를 연관 지어도 괜찮을까?
1:21 – 21절 “어찌 나오미라 부르느냐” 베들레헴 사람들은 모압에서의 상황을 모를텐데 어찌라고 말하는 것일까?
1:21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흉년이 들어서 나갔는데 왜 풍족하게 나갔다고 했을까?
1:21 – 오랫만에 만나면 안부를 묻고 반가워해야 하는것 아닌가?
나오미의 이 말들이 매우 심한 비탄조로 들리는데, 나오미는 왜 고향 사람들을 보고 반갑기 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슬프고 괴로와서 이런 말들을 하는 걸까?
1:21 – 남편, 아들 둘과 함께 네식구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과부 두명으로 가족이 줄어들어서,
“내가 풍족하게 나갔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라고 말한 건가?
1:21 – 나갈 때는 “내가” 주어 인데, 돌아오게 한 분은 “여호와”로 주어가 바뀌었다.
그렇다면 베들레헴을 떠나갈 때는 자의로 나갔지만, 모압에서 돌아오게 된것은 여호와가 비게 하시고 돌아오게도 하셨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될까?
1:21 – 왜 나오미네는 풍족할 때 베들레헴에서 나갔을까? 그리고 모압지방에서 나오미의 가정은 왜이리도 불행을 맛보게 되었을까?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으셨던건가?
1:22 – 베들레헴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계속 베들레헴이라고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1:22 – 모압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붙는 것은 왜일까?
1:22 – 보리 추수 시작할 즈음이면 언제쯤인가?
1:22 –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라고 시기를 콕 집어 밝힌 것이 의미가 있어보이는데,
1장 6절의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라 막 추수가 시작되는 풍성한 계절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함인가?
1:22 – “나오미가 고향에 다시 돌아왔다.(return) “다시 돌아옴” 의 의미가 있을까.
또한 며느리(daughter in law)와 함께 왔다. 피 안 섞인, 이방 여인 룻이 베들레헴에 같이 돌아오게 된 것은 또한 어떤 의미를 가질까?”
1:22 – 보리추수와 밀 추수가 끝나면 객과 고아와 과부는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 다른 추수꺼리들이 있을까?
2:1 –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2절과 2장 2절 사이에 갑자기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1 – “보아스”라는 사람 이름은 솔로몬 성전의 왼쪽 기둥이름과 같은 뜻인가?
2:2 – 룻에게 계속하여 모압여인이라고 부르는데 모압여인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내용이 이어지는데 계속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2 – 밭에서 이삭을 줍는 일에 시어머니의 허락이 필요했을까?
2:2 –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에서, 말한대로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어떤것인가?
율법에서 명한 것인데 은혜를 받아야 주울 수 있는기?
2:2 – 며느리를 딸이라고 불렀다. 왜? 그만큼 친밀해져서?
2:2 –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이삭을 남겨 줍게하는것은 지켜야 할 율법인데 은혜를 입어야지 가능했던것인가?
2:3 –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되어있는데
그 당시에 밭의 형태가 어떻게 되었으며 어떻게 주웠길래 우연히 줍다가 보아스 밭에 이를 수 있을까?
2:3 – 신24:19-21을 보면 과부나 고아와 이방인들에게 허락된 것이 감람나무나 포도나무도 있었는데 왜 하필 이삭을 주우러 갔을까?
2:3 – “우연히” 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보니까 낯설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아래 룻이 보아스를 만나게 된 것 아닌가? 왜 우연히 라고 했을까?
2:3 – 우연'(3절)과 ‘마침'(4절)은 성경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은데, 이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하고자 하는 것인가?
2:4 “보아스는 와서 왜 뜬금없이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고 했을까? 또한 베는 자들은 왜 여호와께서 복주시기를 원한다고 답을 할까?
서로 축복을 나누는 게 관례인 건가?”
2:4 –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보아스의 밭은 베들레헴이 아닌가요?
2:4 –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는 표현은 그 때 당시의 의례적으로 하는 인사일까? 꼭 기록되었어야 하는 표현이었까?
2:4 – 이 구절은 본문 흐름에서 튀어 보이는데, 주인과 베는 자들간에 주고 받는 이 말들이 본문의 맥락상 그렇게 중요한가?
2:4 –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런 댓구는 그 시대의 인사방법 이었나?
2:4 – 훈훈한? 인사를 통해 ‘베는자’들 또한 보아스에게 은혜를 입었음을 표현하고자 한것인가? 암울했던 사사시대에 그러한 보아스를 강조하기 위한 구절이였을까?
2:5 – “누구의 소녀냐” 보아스가 이삭줍는 사람들 사이에서 룻을 가리키며 누구의 소녀라고 묻는 것이
그 때 당시에 대체적으로 젊은 여인이 이삭을 줍는 일이 별로 없어서 눈에 띄어서 물어본 걸까?
2:5 – 누구의 소녀이냐 묻는 질문에 왜 6절 뒤에 7절에서 처럼 룻이 어떻게 이삭을 주웠는지까지 말을 할까?
2:6 – “나오미와 함께” 나오미는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나오미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2:7 – 이방여인 룻이 다른 나라 와서 그나라 사람 밭에서 이삭 주워도 되는 건 합당한 일일까?
2:7 –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 이삭을 줍는다고 했는데, 이삭을 주울 수 있는 은혜라도 구하며 하루종일 밭에 있는 룻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죄인의 모습이라 생각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