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주일은 11월의 첫주입니다. 어느덧 2020년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양주의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가을도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듯 합니다.
코로나 상황은 아직 진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해 주시며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보호해주십니다.
2020년의 마지막을, 그리고 돌아오는 주일을 맞이하여 살아갈 힘을 채워줄
11/1, 하나님의 말씀은 룻기 2장 17절~3장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아래는 지난 금요일 뉴시티광염교회 성도들이 관찰하여 연구한 질문들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중물로 삼을 수 있도록 이 질문들을 함께 공유합니다.
사랑합니다.
# 룻기 2장 17절 ~ 3장 1절
2:17 – 한 에바는 얼마정도의 양일까?
2:18 – 나오미는 룻에게 “내 딸아”하고 부를 정도인데, 성경은 계속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고부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은 왜일까?
2:19 – 어디서 주웠느냐?’ 질문하면 ‘보아스의 밭입니다’ 하고 대답하면 될 내용인데, 말을 바꾸어가며 반복하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인가?
강조를 위함인가? 다른 의미가 더 있는 것일까?
2:19 – 보아스를 ‘기업무를 자’라고 말하는 것과 3:1의 ‘안식할 곳’은 연관이 있는가?
2:19 – 나오미가 ‘기업무를 자’를 언급한다는 것은 이미 ‘계대결혼’을 마음에 둔 것일까?
이전에는 계대결혼에 대해 소망의 생각이 없다가 보아스의 이름을 듣고 그제서야 생각난 것일까?
2:20 – ‘베풀기를 그치지’에 해당하는 원어인 [아자브]는 1:16에서는 떠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20절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
2:20 –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룻을 가르키는가? 그렇다면 대화가 계속되고 있는 중인데 이런 식으로 대사를 끓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2:20 – 나오미는 어떻게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 중 하나인지 알았을까? 이미 알고 있었다면, 왜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업무를 자들을 먼저 찾아가지 않았을까?
2:20 – 그가 여호와로부터… 그가 살아있는 자와…’에서 앞에 ‘그’와 뒤의 ‘그’는 각자 다른 대상을 가르킬까?
번역본에 따라 뒤의 ‘그’를 ‘여호와’로 번역하던데,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이해가 너무 많이 달라지게 되는 부분이지 않은가? 어떤 역본으로 읽는 것이 바른 이해일까?
2:20 –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라고 했는데, 보아스가 죽은자에게 베푼 은혜가 무엇이길래, 죽은 자가 포함되어 언급되는 것인가?
2:20 –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라는 문장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직역성경에는 ‘산자와 죽은자에게 인애를 저버리지 않으시는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을 것’이라고 다르게 번역한 이유가 무엇인가?
2:20 – 1:20의 보아스의 은혜(헤세드)와 여호와의 은혜(헤세드) 그리고 1:8의 룻의 은혜(헤세드)는 구별되는가?
2:20 – 고엘 제도의 여러 책임들 중에 우선 순위가 있는가?
2:21 – 보아스는 기한을 정하지 않았는데, 룻이 나오미에게 이야기 할때는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라고 기한을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3절의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라는 시기와 맞추기 위한 의도일까?
2:21 – 룻은 대답에서 ‘소년들과 함께 있으라’고 했는데, 나오미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22 – 나오미는 왜 룻에게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일까?
2:22 –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2:22 – 2:8과 2:22은 주체가 나오미에서 보아스로 바뀌었을 뿐 거의 같은 표현의 구절인데, 전혀 다른 인물이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른 밭’ 이 강조되어 생기는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
2:23 –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라고 기록한 이유가 있는가? 없어도 되는 너무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2:23 –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는 시기는 얼마 정도의 기간인가?
3:1 – 안식할 곳은 2장 12절에 나온 여호와의 날개아래 보호 받으러 온 것과 연결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