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주일 설교로 함께 나눌 룻기 3장 13~18절 말씀에 대한 뉴시티광염교회 성도들의 본문 관찰 질문입니다.
뉴시티광염교회에서는 돌아오는 주일 말씀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본문을 미리 연구하는 시간을 매주 금요일 기도모임 시간에 갖습니다.
이는 주일 말씀이 온전히 경험되게 하기 위한 마중물 같은 시간입니다. 

연구질문들을 함께 읽어보기 위해서는, 성경 본문을 직접 보는 것이 도움이 될듯하여 먼저 해당 본문의 개역개정을 올려드립니다. 
이후 성도들의 질문을 공유합니다. 

[룻기 3:13 – 18]
13.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
14. 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 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 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13절 – 보아스는 왜 답변을 해준 한 밤 중에 곧바로 룻을 돌려보내지 않고 새벽에서야 돌아가게 하였을까?

13절 –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을 굳이 아침에 만나야 했을까? 이 일이 보아스에게 그렇게 시급했을까?

13절 – 기업무르는 일을 기뻐하지(하패츠) 않으면 이라고 거절의 경우를 묘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뻐하진 않지만 수락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14절 – 왜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몰라야 하는가? 당시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가는 것을 터부시 했을까? 타작은 남자들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15절 – 사람들이 알기전에 자리를 떠나야 하는 룻에게 굳이 보리를 챙겨준 이유가 무엇일까?

15절 – 사람들이 깨면 안되는 상황에서 굳이 보리를 여섯번이나 되어준 이유가 무엇일까?

15절 – 보리를 주는 것으로 보아, 보아스와 룻의 이 일이 보리 타작 때에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시기상 보리 추수 후에 밀 추수가 있다고 들었는데, 밀 추수와 밀 타작 때가 아니라 보리 타작 때라는 것은 시기가 언제 쯤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15절 – 입고 있는 겉옷 자락을 펴서 보리를 담아준 것인가? 겉옷을 벗어서 보리를 담게 한 것인가?

17절 – 보리와 숫자 여섯이 갖는 의미가 있을까? 약속한다는 보증서와 같은 것이 아니라 증거가 될수도 없는 것인데

17절 – 나오미에게 빈손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1:21에서 비어 돌아오게 되었다는 나오미의 푸념에 대한 답인 것일까?

17절 – 사실 내용의 흐름은 17절이 없어도 전개상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보아스와의 다른 대화는 생략처리 하면서도 17절 만큼은 언급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17절 – 정작 보아스와의 대화에선 생략되었던 “빈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허더이다” 라는 말을 룻이 나오미에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보아스가 하지 않은 말을 지어낸 것일까? 보아스와의 대화에선 생략된 것일까? 왜 룻과 나오미와의 대화에선 생략되지 않았을까?

17절 – 17절의 “빈손으로 가지 말라”는 말이 1:21에서 나오미가 “비어 돌아왔다”고 말한 구절과 연관이 있는가?

17절 – 과연 보리 여섯번으로, 비어 돌아온 나오미의 심령을 온전히 채워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여섯’이라는 단어와 18절의 ‘성취하기 전’이라는 표현간에 유의미한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18절 – 나오미가 룻에게 일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야솨브) 있으라고 말하는데, 이는 2:7에서 잠시 쉬던(야솨브) 룻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어떤 관련이라도 있을까?

18절 –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있으라”고 하는데, 단순히 ‘기다리라’는 표현이 아니라 왜 앉아있으라고 하는 걸까? 다른 의미가 더 있을까?

18절 – “이 일”이란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을 가리키는가? 혹은 고엘이 되어 돌아오는 일을 말하는가?

18절 – 왜 오늘 이 일이 성취되어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시급하게 움직이는 이유가 있을까?

18절 –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는 나오미의 말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결국 모든것을 완성시키시고 이루시는 분은 쉬지않고 일하시는 분, 은혜를 베푸시고 복주시기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 이시라는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