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주일 예배 본문은 룻기 4장 1~12절 말씀입니다.
아래는 지난 금요일 각 가정의 기도모임 시간에 돌아올 주일 본문을 미리 관찰하고 연구하여 밴드에 공유한 성도들의 질문입니다.
예배를 앞두고 모든 성도들을 위해 질문을 모아 공유합니다.
# 룻기 4장 1 ~ 12절
01절 – 기업 무를 자가 ‘마침’ 지나가는데, 우연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까?
01절 – ‘마침’이라는 단어는 룻기에서 하나님의 섭리로 여러번 사용되었는데, 이 구절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된 것일까?
01절 – 기업 무를 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아무개’라고만 한 이유가 무엇일까?
02절 – 보아스가 장로 10명을 증인으로 청했는데, 왜 10명일까? 이런 일에 모이는 장로의 수가 10명으로 정해져 있었나?
02절 – 10명의 장로를 앉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 10이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을까?
02절 – 왜 열명을 청했나?
03절 – 3절, 5절에서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고 한 것은 아닌데 보아스는 왜 ‘나오미가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판매하려고 한다’고 이야기 했을까?
03절 – 나오미가 이미 전재산을 처분하고 떠났던 게 아니었었나?
03절 – 보아스보다 먼저 기업 무를자에 가까웠던 친족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04절 – 왜 그냥 ‘장로들’이 아니라 ‘내 백성의 장로들’이라고 했을까?
05절 – 기업무를 자가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나오미의 손’에서 사는 것인가, ‘룻의 손’에서 사는 것인가?
05절 – 기업 무를 자 아무개는 5절의 내용을 몰랐을까? 왜 처음엔 무른다고 하고선 설명을 듣고선 무르지 못하겠다고 말을 바꾸는 것일까?
05절 – 룻에게서 무엇을 산다는 말일까? 무엇을 사서 기업을 세우는 것인가?
06절 – 원래 있던 기업 무를 순위를 거스르고 보아스가 기업 무를자가 되는 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
일까?
06절 –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었던 아무개의 등장 덕분에 보아스의 인애가 더욱 돋보이는 효과가 생겼는데, 그렇다면 아무개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사사 시대를 상징하는 것일까?
06절 – 아무개는 본인의 기업에 손해를 끼칠까하여 기업을 무를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데, 기업 무르는 일은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06절 – 아무개는 자신의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하여 무르지 못하겠다고 하더니, 정작 보아스에겐 ‘너를 위하여 사라’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개에게 손해였다면 보아스에게도 비슷한 손해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
07절 – 아무개가 말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7절의 설명이 나와 대사를 끊어가는 것은 왜일까?
08절 – 아무개는 기업을 무르는 것이 손해를 일으킨다고 하고선, 정작 보아스에게는 왜 ‘너를 위하여’라고 말했을까?
09절 – 9절,10절, 11절, 증인이라는 단어가 3번이나 반복되는데, 장로들과 모든 백성을 증인으로 삼는 이 장면이 결혼의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결혼의 이미지를 보이기 위함일까?
09절 – 모든 것을 샀다고 하는데, 소유지를 사는 것을 모든 것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을까?
10절 – 룻이 말론의 아내였음은 본문에서 나오는데, 말론은 몇번째 아들이었을까?
10절 – ‘이름이 성문에서 끊어진다’는 표현은 대가 끊어진다는 뜻의 관용적인 표현인가? 왜 성문인가?
11절 –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1절 – 1:2의 ‘유다 베들렘 에브랏 사람’과 4:11의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기 하시길 원한다’고 하는 구절은, 미가서 5:2의 예언인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족속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에서 의도적으로 인용되는 듯한데, 11절의 이 표현이 구속사를 가르키는 것일까?
11절 – 라헬과 레아 같게 하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11절 – 왜 베들레헴이라는 이름 외에 또 다른 이름인 에브랏을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을까?
12절 – 베레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2절 – 룻의 이름 대신 ‘젊은 여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12절 – 베레스도 계대결혼이었는데, 또 다시 계대결혼을 통해 다윗과 예수님의 계보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계대결혼이 구속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것인가?
12절 – 엘리멜렉과 말론의 이름을 잇겠다고 하고서는 여전히 계보에선 보아스의 이름으로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