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돌아오는 주일 본문은 룻기 4장 9절에서 22절까지 말씀입니다. 
어느덧 룻기 강해 9번째이자 마지막 시간입니다. 
다음주에는 신약의 디도서를 살펴보려 합니다. 

아래는 금요일 기도모임 때 나눈 뉴시티광염교회 성도들의 본문 관찰 연구 질문입니다.
주일 예배에 앞서 말씀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하여 함께 공유합니다. 

사랑합니다. 

 

# 룻기 4장 9~22절

12절 –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다고 하고선, 18절 이후 다윗의 계보가 베레스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토록 베레스가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12절 – 아이가 유명하게 되길 바란다고 14절에도 반복되는데, 무슨 의미일까?

12절 – 본문에서 여인들이 베레스와 같기를 원하다고 할 정도이면 베레스가 잘 살았기 때문인가? 베레스가 자신의 출생 과정을 알았다면 평생 힘들지 않았을까?

14절 – “오늘 네게 기업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에서 없게한다는 단어에 ‘샤바트’ 사용되었는데 샤바트라는 단어는 끊기다, 그치다 이런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쉬다라는 의미, 안식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14절 – 왜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을까?

15절 – 오벳이 왜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인가?

15절 – 나오미에겐 아들이 둘이었는데, 일곱아들이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15절 – 나오미는 아들이 둘이었는데, 왜 일곱아들보다 낫다고 언급되는 것일까? 잘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부럽다는 우리나라 속담 같은 의미인가?

16절 – ‘아기를 품에 품고’ 라는 표현이 없어도 양육했다는 의미는 전달이 되는데, 이 표현을 기록한 의도가 있을까?

16절 – 왜 룻이 아니라 나오미가 양육자가 되는 것인가?
16절 – 나오미가 전담해서 양육자가 된 것일까? 어머니인 룻에 비해 어느정도 양육에 참여한 것일까?
16절 – 아기는 정말 엄마인 룻이 아니라 할머니인 나오미가 키웠을까?

17절 – 왜 자녀의 이름을 여인들이 지어주었을까?
17절 – 아기의 이름을 왜 나오미나 룻이나 보아스가 아닌 이웃여인들이 지어주었을까?

17절 – 왜 이름을 오벳이라고 지었을까? 오벳의 뜻은 섬기다는 동사에서 나왔기에 명사형으로 쓰면 종이란 뜻이 되는데..
17절 – 아이의 이름이 섬긴다는 뜻의 오벳이라면, 나오미의 ‘노년의 봉양자’이기 때문일까?

17절 – 계대결혼으로 아이를 낳으면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않아야 하는가? 오벳의 동생들이 있었을까?

17절 – 아이는 룻이 낳았는데,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히브리어로는 아들과 손자의 차이가 없다지만, 한국어로 번역할때 손자라고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18절 – 베레스의 계보라고 하는데, 왜 유다가 아니라 베레스에서 시작할까?

18절 – 보아스는 계대결혼으로 출생한 베레스의 후손이고, 또한 어머니도 여리고의 라합이였기에, 더욱 이방여인이자 과부인 룻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공감하여 애뜻함으로 다가갔던 것인가?

22절 – 4장 뒷부분에선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게 아니라 나오미의 이야기로만 마무리 되는데, 제목이 룻기이면서 왜 룻의 이후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일까?